원불교 대사전„

원불교 용어사전

대종사십상
[大宗師十相]

개요 내용과 의미 의의

개요

소태산대종사의 일생 행적과 활동을 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 정산종사는 “과거 부처님의 일대기는 팔상으로 기록했거니와 소태산대종사의 일대기는 십상으로 기록하리니, 첫째 하늘보고 의문내신 상(觀天起疑相), 둘째 삼밭재에서 기원하신 상(蔘嶺祈願相), 셋째 스승 찾아 고행하신 상(求師苦行相), 넷째 강변에서 입정하신상(江邊入定相), 다섯째 노루목에서 대각하신 상(獐項大覺相), 여섯째 영산 앞에 방언하신 상(靈山防堰相), 일곱째 혈인으로 법인 받은 상(血印法認相), 여덟째 봉래산에서 제법하신 상(蓬萊制法相), 아홉째 신룡리에서 전법하신 상(新龍轉法相), 열째 계미년에 열반하신 상(癸未涅槃相)이시니라”(《정산종사법어》 기연편18) 하고 십상의 명목을 밝히고 있다.

내용과 의미

① 관천기의상:소태산이 7세경부터 우주만유의 온갖 이치와 인간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스스로 큰 의심을 일으키어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되었다.

② 삼령기원상:11세 되던 해 어느 가을날 문중의 시향제에 참석했다가 신통 불가사의한 힘을 가졌다는 산신(山神)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이때부터 산신을 직접 만나서 모든 의심을 해결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삼밭재 마당바위를 오르내리면서 산신을 만나려는 기도를 5년간이나 지성으로 계속하게 되었다.

③ 구사고행상:16세 되던 해 봄, 환세인사차 처가에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고대소설 《조웅전》 읽는 소리를 듣는 중 주인공이 도사를 만나 신통 묘술을 배워 크게 성공하고 모든 소원을 다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느낀 바가 있어 이때부터 산신 만나기를 단념하고 보통 인간과 똑같은 형상을 가졌다는 도사를 만나서 모든 의심을 해결해 보리라는 결심으로 스승을 찾아 온갖 고행을 거듭하게 되었다.

④ 강변입정상:20세가 넘자 산신과 도사는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가공적인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내 이 일을 장차 어찌할까?” 하는 큰 걱정만 날로 쌓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연히 떠오르는 주송을 외우기도 하고 때로는 등상처럼 우두커니 한곳에 서서 깊은 명상에 빠져들게 되었다. 24~25세경을 전후해서는 일체의 사량 분별을 잊어버리고 큰 정(大定)에 들게 되었고, 이 무렵 어느 여름날 선진포 나루터에서 반일(半日) 동안이나 입정상태에서 그대로 서 있기도 했다.

⑤ 장항대각상:26세 되던 1916년(원기1) 4월 28일 이른 새벽, 동쪽 하늘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문득 마음이 밝아지면서 모든 의심이 일시에 다 풀리고 마침내 일원의 진리를 크게 깨치게 되었다.

⑥ 영산방언상:대원정각을 한 후 최초로 구인제자를 얻어 저축조합을 설치하고 미신타파ㆍ허례폐지ㆍ근검저축ㆍ절약절식ㆍ공동출역 등으로 새 생활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1918년(원기3) 4월부터 1년간 구인제자들과 함께 영산 앞의 갯벌을 막아서 간석지 개간사업을 전개했다. 그리하여 이때 약 2만 6천여 평의 농토를 새로 만들게 되었고, 이를 통해 훗날 새 회상 창립의 경제적 기초로 삼았다.

⑦ 혈인법인상:기미년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퍼지자 방언공사를 서둘러 끝마치고는 이어서 구인제자로 하여금 마음을 통일시키고 공도정신을 살리기 위해 진리 앞에 사무여한의 기도 서원을 올리게 했다. 1919년(원기4) 8월 21일에 마침내 백지혈인의 이적이 나타나 새 회상창립의 법계 인증을 얻게 되었다.

⑧봉래제법상:혈인기도를 끝낸 다음, 그해 10월경에 전북 부안 봉래정사로 들어가 몇몇 제자들과 함께 수양과 보림에 주력했다. 한편으로는 창립인연들을 만나고 일원상ㆍ사은사요ㆍ삼학팔조를 중심으로 한 교리의 강령을 제정하고, 《조선불교혁신론》ㆍ《수양연구요론》 등의 초기교서를 초안했으며, 총부 건설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⑨ 신룡전법상:마침내 기회가 무르익자 1924년(원기9) 6월 1일에 익산 보광사에서 불법연구회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교문(敎門)을 공개하게 되었다. 이어 전북 익산시 신룡동 344-2에 총부기지를 정해 12월경에 1차 건설을 끝내고 이로부터 20여년간 제생의세의 교화사업을 펴기 시작했다.

⑩ 계미열반상:일제의 압정 속에서 교단을 창립 발전시켜 오다가 1943년(원기28) 계미년 6월 1일 53세로 열반했다. 대종사십상은 소태산의 일생인 동시에 원불교 창립의 큰 물줄기이며 초기 교단사이기도 하다. 대산종사는 대종사십상에 대해 “앞으로는 누구든지 대종사님의 역사를 배울 것이며, 또 알아야 할 것이며, 우리도 다녀와서는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이니, 만일 올바른 역사가 나와 있지 아니하면 신비에 빠지거나 이상한 신화(神話)가 남게 될 것이라 우리의 영생문제가 염려되므로 그 역사를 기록하는데 착수했었다”(《정전대의》)고 설명하고 있다.

그 대의를 살펴보면, “① 관천기의상:대각의 열쇠인 대소유무의 이치를 차례로 의심했다. ② 삼령기원상:지원지성(至願至誠)으로 정신통일이 되셨다. ③ 구사고행상:인생의 정로를 얻기 위하신 대고행 난행으로 스스로 스승이 되셨다. ④ 강변입정상:대의단(大疑團)으로 대정(大定)에 잠기셨다. ⑤ 장항대각상:일원대도를 대각하시어 불일(佛日)을 중휘(重輝)시키고 법륜(法輪)을 부전(復轉)하셨다. ⑥ 영산방언상:영육쌍전ㆍ이사병생ㆍ동정일여한 교리와 제도로 새 종교의 대기반을 만들어주셨다. ⑦ 혈인법인상:사무여한ㆍ무아봉공의 전무출신 정신으로 음ㆍ양계의 인증을 받아 공도주의를 부활시키셨다. ⑧ 봉래제법상:만법의 주종인 일원대도 아래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와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를 제정하셨다. ⑨ 신룡전법상:불법과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를 만들어서 도덕으로 훈련시키게 하여 전 생령의 활로를 열어 주셨다. ⑩ 계미열반상:일대겁만에 출현하는 대회상을 창립하시고 유래에 없는 재가ㆍ출가ㆍ남녀제자에게 원만평등하게 일원대도를 전해주시고 대열반에 드시었다”고 밝히고 있다.

의의

대종사십상을 통해서 소태산의 생애를 되돌아볼 때, 다음과 같은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① 진리에 대한 의문이 곧 대각의 열쇠가 되며, 성자가 되기 위한 첫 걸음임을 밝히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부처님의 생애를 팔상(八相)으로 보고 있는데, 그 첫 장면은 탄생 이전의 전생사로 인간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도솔천의 호명보살로 머물고 있던 장면을 다룬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이고, 두 번째 장면은 룸비니동산에서 마야부인의 우협(右脅)으로 태어나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선언하는 장면을 다룬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이다. 이는 범부와 다른 성자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대종사십상은 전생과 탄생의 신비함과 이적보다는 진리에 대해 의심을 통해 결국 대각을 이루고 성자가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누구나 그 출신성분에 상관없이 도를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② 의문을 해결해 가는 구도의 과정을 자상히 밝히고 있다. 산신-도사-입정으로 이어지는 구도의 과정, 곧 인간 세상 밖의 산신으로부터 차차 인간 세상의 도사를 거쳐서 결국 자기 내면의 깊은 탐구를 통해 비로소 대각을 이루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서 진리가 나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얻어질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누구든지 자기 내면으로부터 참다운 진리를 얻을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③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대각을 이룰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부처님 팔상을 보면,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고행상(雪山苦行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을 통하여 출가와 구도, 그리고 성도의 길을 밝히고 있다. 부처님이 탄생과 함께 모든 부귀영화를 갖추었음에도 이를 모두 버리고 과감히 출가를 단행했고, 6년간 온갖 고행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보리수 아래에서 항마성도했다. 이후 많은 수행자들은 출가를 중시하여 도를 성취하기 위해 세속의 생활과 직업 등을 불고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 되었다. 이에 대하여 소태산의 구도와 대각의 과정을 보면, 탄생지인 전남 영광을 떠나지 않은 채 발심, 구도했으며, 마침내 당시 생활하던 처소를 떠나지 않은 채 대각을 성취함으로써 공부인이 현실생활을 떠나지 않고 도를 이룰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었으며, 이후 출가수행자뿐만 아니라 재가인에게도 그 공부길을 활짝 열어 주고 있다.

④ 대각 후 제도와 전법의 과정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대종사십상은 대각 후의 그 법을 실천하는 과정을 영산방언상, 혈인법인상, 봉래제법상, 신룡전법상 등으로 밝힘으로써 새 회상의 경제적 토대와 정신적 기초를 마련한 점, 만대의 교법의 강령을 제정한 점, 중생의 교화를 위해 법륜을 굴린 점 등이 현실의 삶속에서 제자들과 하나하나 구현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는 앞으로 제중의 과정이 어느 한 성자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일심합력을 통한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⑤ 누구나 대도정법의 법주(法主)가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일반적으로 열반을 당하여 게송을 발표하거나 개별적으로 법을 전하던 방식과 달리 소태산은 열반을 여러 해 앞두고 미리 게송을 발표함과 동시에 누구나 그 뜻을 알면 법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출가든 재가든 상관없이 누구나 이 법의 참다운 주인이 되도록 문호를 활짝 열어 주고 있다.

이상의 대종사십상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질 수 있는데, 전반부 5상은 성불의 과정을 중심으로 했다면, 후반부 5상은 제중의 과정을 중심으로 하여 성불과 제중의 비중을 대등하게 둠으로써 대각의 성취와 함께 대각 후 법의 바른 실천을 또한 중시하고 있다. 위의 대종사십상의 다섯 가지 의의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누구든지 진리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대각의 길에 이를 수 있고,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으며, 현실의 생활을 벗어나지 아니하고 큰 공부를 성취할 수 있고, 나아가 대각 이후 그 진리를 통해 삶을 변화시켜 나가며, 궁극에는 모두가 참다운 법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밝히고 있다. 〈張眞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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