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호는 동산(冬山). 소태산대종사 봉래주석기의 전문 시봉인. 《대종경》 수행품 33장, 인도품 36장, 성리품 14・22장, 신성품 18장, 전망품 7・29장 등 7곳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1863년 6월 5일에 전남 곡송군 곡성면 장선리에서 부친 화준(華俊)과 모친 하(河)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다가 52세시 전주로 이사하여 한의업을 경영했다. 1920년(원기5) 친구인 송적벽의 인도로 전북 부안 변산을 찾아 소태산의 제자가 되었다. 후일 소태산은 법설하는 자리에서 “문정규는 늙은 몸으로 그 산중 험로에 들어와서 거처와 음식이 기구하건마는 나 하나 만나 보려는 자미로 모든 고생됨을 잊어버리고 오직 즐거워만 했다”고 칭찬했다.
1934년(원기19) 《회보》 제9호에 ‘어떠한 고라도 낙 삼을 줄 아는 자는 행복자니라’는 법문이 있으며, 1924년(원기9) 불법연구회창립총회 때는 전주지방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이후 익산총부 건설에 적극 동참, 송적벽・김광선 등과 더불어 엿 제조업을 발의했고, 소태산이 법설 때면 박사시화・김남천 등과 더불어 백발을 휘날리며 춤을 추어 법흥을 돋구었다. 만년에는 ‘노청년(老靑年)’이란 별명을 들으며 낙도 수양하다가 1936년 4월 13일에 열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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