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불생불멸의 의미 인과보응의 의미 인과보응과 음양상승 불생불멸 인과보응과 일원상 진리
개요
일원상 진리의 핵심이자 소태산대종사가 깨친 진리의 핵심내용. 생하지도 아니하고 멸하지도 아니하며, 선인선과 악인악과가 지은대로 보응되는 이치를 말한다. 소태산은 대각을 이루고 그 제일성(第一聲)으로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대종경》 서품1)라고 했다.
불생불멸의 의미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의 이치는 일원상 진리의 내용이요, 우주의 진리이다. 석가모니불은 이 진리를 깨쳐 불교를 창시했고, 소태산도 이 진리를 깨쳐 원불교를 창건했다. 불교에서는 현실세계는 생함이 있고 멸함이 있으나 그 근본은 생함도 없고(불생) 멸함도 없다(불멸)고 했으니, 이것이 곧 불생불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태산은 불생불멸의 이치를 ‘없음’의 논리보다 ‘돌고 도는’ 논리로 밝히고 있다.
불교에서 현실세계는 생과 멸로 변화하여 떳떳함이 없으나 근본은 생과 멸이 없으니(불생불멸) 이것이 참 진리라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근본과 현실을 나누어 놓는 것이 되며, 현실에 집착하지 말고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의미, 곧 현실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태산의 ‘돌고 도는’ 논리는 현실과 근본을 나누지 않고, 현실과 근본을 하나로 보는 것이다. 모든 것은 생과 멸로 돌고 도는 것이니, 이 돌고 도는 것이 일원상의 진리이다.
소태산은 불생불멸을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정전》 일원상의 진리)라고 했다. 이는 생과 멸이 변함이 없이 돌고 돈다는 것으로, 한번 돌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게 돌고 돈다는 것이다.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다는 것은 불생불멸의 진리를 말한 것이다. 또 “진공묘유의 조화는 우주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無始曠劫)에 은현자재(隱顯自在)하는 것이 곧 일원상의 진리니라”(《정전》 일원상의 진리)고 했다. 진공묘유 곧 일원상 진리의 조화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숨었다 나타났다 하면서 영원하게 돌고 돈다는 것이다. 이것을 또한 불생불멸이라 할 수 있다.
“상주불멸로 여여자연(如如自然)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했고”(《정전》 일원상서원문)라 했다. 항상 없어지지 않고 한량없는 세계를 전개했다는 것이요, 한량이 없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영원하고 공간적으로 다양한 것이다.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정전》 일원상법어)라고 했다. 인간의 생멸이 우주의 사시순환과 같이 돌고 돈다는 것이니, 일반적으로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가 늙으면 죽어 버리는 것으로 알지만, 인간의 삶과 죽음은 우주의 사시순환과 같이 영원하게 돌고 돈다는 것이요, 이것이 불생불멸인 것이다.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정전》 게송)고 했다. 게송은 소태산이 일원상의 진리를 가장 간단한 어구로 집약해서 밝힌 것이다. ‘돌고 돌아 지극하면’이라 했으니, 모든 것은 돌고 있다는 것이요,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돌고 없는 것은 있는 것으로 돈다는 것이다. 지극하게 돌아 돈다는 것을 볼 수 없을 만큼 돌며, 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돈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극하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엄청나게 돌고 있다는 표현인 것이다.
또한 ‘유와 무가 구공이나’라고 했으니, 이는 너무나 엄청나게 돌기 때문에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며, 있다고 하자니 없어지고 없다고 하자니 있어진다는 것이다. 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도니, 돈다고 할 수 없는 것이요, 이 경지는 비었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곧 불생불멸이다. 또 “천지는 생멸이 없으므로 만물이 그 도를 따라 무한한 수(壽)를 얻게 됨이니라”(《정전》 천지피은의 조목)고 했다. 천지는 생멸이 없이 영원하게 돌고 돌아 만물의 생명을 무한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또한 불생불멸이다.
인과보응의 의미
“천지의 영원불멸한 도를 체받아서 만물의 변태와 인생의 생・로・병・사에 해탈(解脫)을 얻을 것이요”(《정전》 천지보은의 조목)라고 했다. 소태산은 불생불멸을 영원불멸이라고도 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돌고 돈다는 것이다. 영원불멸의 도는 우주와 만물을 생・로・병・사로 돌고 돌게 하며 인생을 생・로・병・사로 돌게 하는 이 도의 이치를 체받으면 생사를 해탈케 한다는 것이다.
우주와 인간을 없는 면으로 보면 불생불멸이며 있는 면으로 보면 인과보응이다. 우주와 인간에 나타난 모든 현상은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며, 반드시 어떠한 원인이 있어서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광명을 따라…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며”(《정전》 일원상의 진리)라고 했으니, 텅 비어 있으면서 신령한 앎이 있어 선과 악의 업인과 과보를 나타낸다. 인이 있어 과를 나타내니 인과보응이다.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과 만물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사생(四生)의 심신작용을 따라 육도(六途)로 변화를 시켜 또는 진급으로 또는 강급으로 또는 은생어해(恩生於害)로 또는 해생어은(害生於恩)으로 이와 같이 무량세계를 전개했나니”(《정전》 일원상서원문)라고 했다.
우주가 성・주・괴・공으로, 만물이 생・로・병・사로 나타나는 것은 어떠한 인이 있어 그러하며, 이것이 곧 인과보응이다. 사생의 심신작용을 따라 육도로 나타나는 것은 선악간에 지은 바 인의 결과이다. 소태산은 “동물들은 하늘에 뿌리를 박고 살므로 마음 한번 가지고 몸 한번 행동하고 말 한번 한 것이라도 그 업인이 허공법계에 심어져서 제각기 선악의 연을 따라 지은대로 과보가 나타나나니 어찌 사람을 속이고 하늘을 속이리요”(《대종경》 인과품3)라고 했다. 유정중생이 지은 업인은 허공법계에 심어지며, 그 심어진 업인 따라 육도로 나타내게 하는 것은 음양상승의 조화에 의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심신작용이 인이 되어, 많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착한 인을 지으면 진급이 되고 악한 인을 지으면 강급이 되며, 유정중생이 지은 선악간의 업인따라 한량없는 세계가 천차만별로 나타나니, 이것이 곧 인과보응이다.
인과보응과 음양상승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정전》 일원상법어)라고 했다. 음의 기운이 극하면 양의 기운이 나타나듯, 지은 업력이 극하면 과보로 변한다는 뜻이다. 음이 지나면 반드시 양이 나타나듯이 인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를 받는다. 소태산은 “우주의 음양상승하는 도를 따라 인간에 선악인과의 보응이 있게 되나니…인간의 일도…선과 악의 짓는 바에 따라…상생상극의 과보가 있게 되나니 이것이 곧 인과보응의 원리니라”(《대종경》 인과품2)고 했다.
소태산은 대각의 경지에서 음양상승하는 기운과 인과보응하는 기운을 하나로 보고,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이 된다고 했다. 불교의 유식사상에서는 육근으로 지은 업인이 제7식을 거쳐 제8식에 함장되었다가 연을 따라 과보로 나타난다는 원리로 인과보응의 법칙을 밝혔다. 그러나 소태산은 인간의 마음작용과 우주의 음양상승하는 기운을 직결시켜 곧 인과보응의 법칙을 움직이게 하는 원리를 밝히고 있다.
그는 “눈 한번 뜨고 감는 것과 숨 한번 내쉬고 들이쉬는 것 하나하나가 음양상승의 기운”(박창기, 《대종사법설집》)이라 했다. 우리가 짓고 받는 것은 육근작용이나, 이 육근작용에는 음양상승의 기운과 인과보응의 기운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짓고 받는 인과보응의 작용과 음양상승의 작용은 하나인 것이다.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이 된다”는 것은 소태산의 독창적인 사상이다.
불생불멸 인과보응과 일원상 진리
소태산은 일원상의 진리를 “원만구족한 것이며 지공무사한 것이로다”(《정전》 일원상법어)라고 했다. 일원상의 진리는 곧 지공무사한 것이다. 지공무사는 지극히 공정한 것이요, 공정한 것은 틀림이 없는 것이니, 일원상의 진리는 지은 대로 받게 해주며, 옳고 그름을 소소영령하게 알아서 공정하게 받게 해준다는 것이다.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정전》 게송) 했다. 일원상의 진리는 텅 비어 있으면서 가득찬 것으로, 가득찬 것은 만능의 위력을 나타내는 것이니, 인과보응은 지은대로 받게 하는 만능의 나타남이다.
“천지의 도는 지극히 밝은 것이며…지극히 공정한 것이며”(《정전》 천지피은의 강령)라고 했다. 지극히 밝은 도는 인과보응의 이치가 소소영령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지은 바 인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요, 조금도 혼란함이 없이 짓는 바를 따라 밝게 구분해 주는 것이 인과보응의 작용이다. 지극히 공정한 도는 지은 대로 공정하게 받게 해주는 작용으로, 지극히 공변되어 사(私)가 없이 지은 대로 나타내는 것이요, 선악업보에 구별이 완연하다. 인과보응을 체로 보면 ‘밝은 도’이며 용으로 보면 ‘공정한 도’라 할 수 있다.
정산종사는 “일원 가운데 또한 인과의 묘리(妙理)가 지극히 공변(公遍)되고 지극히 밝아서 각자의 마음 짓는 바를 따라 선악업보로 변하는 것이 호리도 틀림이 없고 고금에 변하지 아니함을 알아서 가히 속이지 못하며 가히 어기지 못할 것을 신앙하자는 것이요”(《정산종사법설집》)라고 했다. 일원상의 진리에는 인과의 현묘한 이치가 갖추어 있어 지극히 공변되고 지극히 밝게 짓는 바를 따라 선과 악의 과보로 나타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과의 현묘한 이치는 속이지도 못하고 어기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소태산은 “그 사람이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곳에서라도 미워하고 욕하지 말라. 천지는 기운이 서로 통하고 있는지라 그 사람 모르게 미워하고 욕 한번 한 일이라도 기운은 먼저 통하여 상극의 씨가 묻히고 그 사람 모르게 좋게 여기고 칭찬한번 한 일이라도 기운은 먼저 통하여 상생의 씨가 묻히었다가 결국 그 연을 만나면 상생의 씨는 좋은 과(果)를 맺고 상극의 씨는 나쁜 과를 맺나니라”(《대종경》 인과품5)고 했다. 음양상승의 기운은 착함은 상생으로 나타나게 하고 악함은 상극으로 나타나게 하니, 알게 하고 모르게 하는 것에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음양상승의 기운은 숨어 있는 것과 나타나 있는 것을 통관한다. 또 소태산은 “우주와 만물도 또한 그 근본은 본연청정한 성품자리로 한 이름도 없고 한 형상도 없고 가고 오는 것도 없고 죽고 나는 것도 없고 부처와 중생도 없고 허무와 적멸도 없고 없다 하는 말도 또한 없는 것이며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그것이나 그중에서 그 있는 것이 무위이화(無爲而化) 자동적으로 생겨나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변화하고 만물은 생・로・병・사를 따라 육도와 사생으로 변화하고”(《대종경》 천도품5)라고 했다.
여기에서 ‘가고 오는 것도 없고 죽고 나는 것도 없고’ 등은 불생불멸의 내용이며, ‘만물은 생・로・병・사를 따라 육도와 사생으로 변화하고’ 등은 인과보응이라 할 수 있다.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생겨난다는 것, 곧 함이 없이 스스로 되어 진다는 것은 없는 자리에서 있는 자리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없는 것과 있는 것이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은 일원상 진리를 양면으로 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생과 멸이 없는 면으로 보면 불생불멸이며, 원인이 결과로 나타나는 면으로 보면 인과보응이다. “우주의 진리는 원래 생멸이 없이 길이길이 돌고 도는지라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이 되고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이 되며, 주는 사람이 곧 받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이 곧 주는 사람이 되나니 이것이 만고에 변함없는 상도니라”(《대종경》 인과품1)고 했다.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은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우주의 진리가 원래 생멸이 없이 길이 돌고 도는 진리 곧 일원상 진리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韓正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