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불조요경 결집 과정 원불교 교리와의 상관성 불조요경의 의의
개요
원불교의 불교관계 보조 경전. 《불조요경》은 1965년(원기50) 원불교 정화사에서 편찬 발행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각 경마다 의역과 한문 원본이 실려 있다. 현재 사용하는 《불조요경》에 수록된 경론은 다음과 같다. 소태산대종사가 대각을 이룬 후 몽감(夢感)으로 구해보고 나서 연원을 석가모니 부처에게 정했다는 《금강경(金剛經)》과 각종 각파에서 모두 받드는 《반야심경(般若心經)》, 최초의 동전(東傳) 불경으로 되어 있는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인과경(因果經)의 종요(宗要)인 《현자오복덕경(賢者五福德經)》과 《업보차별경(業報差別經)》, 보조지눌(普照知訥)의 《수심결(修心訣)》, 보명(普明)의 〈목우십도송(牧牛十圖頌)〉, 그리고 몽산덕이(蒙山德異)의 〈휴휴암좌선문(休休庵坐禪文)〉이 수록되어 있다.
불조요경 결집 과정
1965년에 편찬 발행하여 사용되고 있는 《불조요경》이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의 최초의 기원은 소태산의 대각과 불교와의 관련으로부터 시작한다. “대종사 대각을 이루신 후, 마음에 홀로 기쁘고 자신이 충만하여, 그 경로를 생각하시되 ‘순서 알기가 어렵다’ 하시고, ‘강연히 말하자면 자력으로 구하는 중 사은의 도움이라’ 하시었다. 대종사 다시 생각하시기를 ‘동양에는 예로부터 유・불・선 삼교가 있고, 이 나라에도 근래에 몇 가지 새 종교가 일어났으며, 서양에도 몇 가지 종교가 있다 하나, 내가 지금까지 그 모든 교의를 자상히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이제 그 모든 교서를 한번 참고하여, 나의 얻은 바에 대조하여 보리라’ 하시고, 이웃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그 경전들을 약간 구하여 대략 열람하시었다.
당시 열람하신 경전은, 유교의 《사서》와 《소학》, 불교의 《금강경》・《선요》・《불교대전》・《팔상록》, 선가(仙家)의 《음부경》・《옥추경》, 동학의 《동경대전》・《가사》, 기독교의 《구약》・《신약》 등인 바, 그중 특히 《금강경》은 꿈으로 그 이름을 아셨다고 한다. 대종사, 경전들을 열람하신 후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 바는 옛 성인들이 또한 먼저 알았도다’ 하시고, ‘모든 경전의 뜻이 대개 적절하여 별로 버릴 바가 적으나, 그중에도 진리의 심천이 없지 아니한 바, 그 근본적 진리를 밝히기로는 불법이 제일이라, 석가모니불은 진실로 성인들 중의 성인이라’ 하시었다.
대종사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 얻은 경로를 돌아본다면 모든 일이 은연중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 바 많으므로, 나의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하노라’ 하시고, ‘장차 회상을 열 때에도 불법으로 주체를 삼고, 모든 교법도 마땅한 바를 따라 응용하여,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고 내정하시었다”(《원불교교사》 제1편 제3장).
이 내용을 보면 소태산이 대각한 후, 그 대각의 연원을 불교에 정하면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1919년(원기4) 10월 6일에, 소태산은 저축조합의 이름을 고쳐 불법연구회기성조합이라 하고, 모든 기록에도 일제히 불법의 명호를 쓰게 하면서 “이제는 우리가 배울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요 후진을 가르칠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니, 그대들은 먼저 이 불법의 대의를 연구해서 그 진리를 깨치는 데에 노력하라.
내가 진작 이 불법의 진리를 알았으나, 그대들의 정도가 아직 그 진리 분석에 못 미치는 바가 있고, 또는 불교가 이 나라에서 여러 백 년 동안 천대를 받아 온 끝이라, 누구를 막론하고 불교의 명칭을 가진 데에는 존경하는 뜻이 적게 된지라, 열리지 못한 인심에 시대의 존경을 받지 못할까 하여 짐짓 법의 사정진위(邪正眞僞)를 막론하고 오직 인심의 정도를 따라 순서 없는 교화로 한갓 발심 신앙에만 주력해 왔거니와, 이제 그 근본적 진리를 발견하고 참다운 공부를 성취하여 일체중생의 혜복 두 길을 인도하기로 하면 이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야 할 것이며, 불교는 장차 이 나라의 주교(主敎)가 될 것이요, 또한 세계적 주교가 될 것이니라.
그러나 미래의 불법은 재래와 같은 제도의 불법이 아니라, 사농공상을 여의지 아니하고, 또는 재가출가를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불법이 될 것이며, 부처를 숭배하는 것도 한갓 국한된 불상에만 귀의하지 않고 우주 만물 허공법계를 다 부처로 알게 되므로, 일과 공부가 따로 있지 아니하고, 세상일을 잘하면 그것이 즉 불법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요, 불법공부를 잘하면 세상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또는 불공하는 법도 불공할 처소와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불공하는 이의 일과 원을 따라 그 불공하는 처소와 부처가 있게 되나니, 이리 된다면 법당과 부처가 없는 곳이 없게 되며, 부처의 은혜가 화피초목 뇌급만방하여 상상하지 못할 이상의 불국토가 되리라”(《원불교교사》 제1편 제5장)고 했다.
불법에 대한 주체 선언과 아울러 장래에 혁신 또는 건설하고자 하는 불교의 모습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불교와의 인연과 《불조요경》의 탄생과정은 불법연구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본격적인 교화와 아울러 불교에 대한 연구를 하던 초기교단의 역사와 같이한다. 현재 《불조요경》에 편입되어 있는 대부분의 경전은 초창기 불법연구회의 기관지인 《회보》를 통하여 번역・연구되고 있었다. 원불교에서는 회원들간의 공부와 상호연락 공지사항을 알리기 위해 조그마한 기관지를 발행했다. 《월말통신》・《월보》・《회보》로 이어지는 이 기관지는 1928년(원기13)부터 시작하여 1940년(원기25) 6월 《회보》 제65호를 내고 종간했다.
이 가운데 1933년(원기18) 8월부터 발간된 《회보》에 회원 상호간의 불교연구를 위해 각종 불교관계 서적이 해설 또는 역해되어 있다. 이 가운데 소개된 다수의 경론들이 《불조요경》에 편입되었다. 《회보》 제14호에 게재된 《죄복보응경》, 제15호에 게재된 《불설현자오복덕경》, 제17~18호에 게재된 《사십이장경》, 제21~22호에 게재된 《선악업보차별경》은 서대원의 해석, 제26~30호에 게재된 《금강경》은 정산종사의 해석, 제54~65호에 게재된 《수심결》은 송도성의 해석, 제59호에 게재된 보명의 〈목우십도송〉 등이 있다. 여기에서 소승경전류와 인과 관련 경전들은 대개 서대원에 의하여 설명이 되어 있고, 대승경전은 정산에 의하여 소개되고, 조사의 어록들은 송도성에 의하여 소개되고 있다.
이를 참고하면 대개 원불교의 불교탐구와 불교관련 서적의 주된 연구는 정산・서대원・송도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상과 같이 기관지로서 회원들간의 상호연락과 상호 공부를 하던 불법연구회는 점차로 체계화된 교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 권의 교재를 만들게 되는데, 그동안 사용하던 《보경육대요령》을 원불교 고유의 내용으로 하고, 권을 달리하여 그동안 《회보》를 통해 공부해 오던 불교의 경론들을 첨가하고 있다. 현 《정전》에 해당되는 《불교정전》 1권은 원불교 초기교서의 집대성판으로, 소태산이 친감하여 1943년(원기28) 발행했다.
이 과정에서 1940년(원기25) 10월 소태산은 도일(渡日)차 부산 남부민교당에 유가(留駕) 중 〈목우십도송〉과 《사십이장경》을 《불교정전》에 첨가하라고 하명했다. 《불교정전》의 내용은 전 3권으로 되어 있으며, 제2권에는 《금강경》・《반야심경》・《사십이장경》・《죄복보응경》・《현자오복덕경》・《업보차별경》 등 불가(佛家)의 경(經)을, 제3권에는 《수심결》・〈목우십도송〉・〈휴휴암좌선문〉・ 의두요목 등 조사(祖師)들의 논(論)을 실었다.
《불교정전》 1권은 1962년(원기47) 《정전》으로 편수, 《대종경》과 합본하여 《원불교교전》으로 발행했고, 2・3권은 1965년(원기50) 《불조요경》으로 간행되었다. 《불교정전》 3권에 수록된 의두요목은 정선된 20조만이 《정전》에 편입되었다. 《불조요경》은 원불교의 보조경전으로 원불교 사상과 관련이 깊은 불경과 조사의 글들을 수록하여 원불교 교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불조요경》의 각 경론은 원문과 의역이 실려 있다.
원불교 교리와의 상관성
《불조요경》에 실린 경론들은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대승경전류, 둘은 인과경전류, 셋은 수행상 필요한 선(禪)관련 논서류이다. 이 세 부류 가운데 편수위원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대승경전인 《금강경》과 《반야심경》으로 판단이 된다. 그 이유는 《불조요경》 편찬회의 과정을 보면 항상 《금강경》과 《반야심경》은 1부에 올라오게 되는 것을 통해서이다. 다소 방편적인 성격을 가진 인과경류는 당시 편찬과정에서 생략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을 본다면 당시 편수위원들의 생각에는 《금강경》과 《반야심경》에 비해 그 중요성이 덜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심결》이나 〈목우십도송〉・〈휴휴암좌선문〉 등은 경전이 아닌데도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실제 조사들이 수행했던 과정이 잘 드러나 있어 수행상의 과정을 잘 밝힐 수 있다. 둘은 비교적 짧은 문장으로 되어 있어서 《불교정전》 편찬 지침인 평이간명의 원칙에 맞는다. 셋째는 실천적이고 실용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사들의 글이 《불조요경》에 올라가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경론들은 원불교의 교리와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원불교의 교리는 일원상 진리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일원상의 진리를 인식하는 논리로서 자주 사용되는 논리가 바로 진공묘유(眞空妙有)이다. 이러한 진공묘유의 현실적 구체적 표현이 바로 불생불멸 인과보응이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조사들의 논서인 〈목우십도송〉・〈휴휴암좌선문〉・《수심결》 등은 모두 다 선종계열의 논서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비교적 특이한 선택으로 보이는 《사십이장경》 또한 중국의 송대 이후 선종계열의 사람들이 일상적인 경전으로 간주한 것을 보면 이 또한 선종계열의 서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금강경》 또한 선종적인 분위기를 많이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경전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금강경》을 선택하게 된 것은 우선적으로 소태산의 대각과 불법에의 연원과도 상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당시 비교적 쉽게 구하고 접할 수 있었던 《금강경》의 선적(禪的)인 부분도 상당히 중요하게 보아야 할 점이다. 《반야심경》은 《회보》에서는 보이지 않는 경전이지만 유독 유일하게 선택된 경전으로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 있다. 곧 《반야심경》은 반야사상이 담긴 대승경전이지만, 비교적 짧은 경전이라 한국불교계에서 주문과 같은 성격으로 많이 수지독송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것 또한 우리나라 전체적인 불교의 분위기 속에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원불교에서 불법에 연원을 두는 그 핵심은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중심으로 한 불교의 반야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반야사상은 바로 소태산의 깨달음과 깨달음의 지혜인 반야지가 각증(覺證)의 차원에서 만나서 일맥상통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과경류가 선택된 것은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평이 간명하게 인과의 사상을 전달할 수 있는 경들이라 선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불조요경》에 실린 대부분의 경론들이 선종의 영향 하에 있는 경론들인 것을 본다면 소태산의 《불교정전》 편찬 정신인 실천적이고 실용적인 부분을 강조할 수 있는 요긴한 경론들로 파악이 되었기 때문이다.
불조요경의 의의
《불조요경》 결집의 의의는 바로 소태산의 대각을 불법에 연원했다는 것과 앞으로 회상을 열 때도 불법으로 주체를 삼고자 했던 소태산의 의지가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태산은 불교의 수많은 경론들을 모두 다 참고하는 것은 새 시대의 생활에 맞지 않는다고 파악하면서 그 요체를 간략하게 드러내고 있는 짧은 내용의 소수 경론들을 선정하여 불교정전을 만드는데 편입하고 있다.
이상을 종합하면 소태산은 깨달음의 경지에서 반야지의 체험, 불법과의 만남, 석가모니불과의 만남을 통하여 불법에 연원하고 앞으로 불법으로 세상을 구하는 주체로 하려고 하나 수많은 경들 가운데 그 핵심이 명확하고 간결한 경전을 위주로 하여 불교의 경론들을 정전에 편입하여 사용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불조요경》에 거의 그대로 편입되고 있다. 따라서 《불조요경》의 편찬은 불법과의 연원관계와 불법의 주체를 천명하는 것을 확인하는 후속 작업임과 동시에 기존의 불교를 바라보는 소태산의 관점과 미래 불교의 방향이 나타나는 교재라 하겠다. 《불조요경》에 실린 경론들의 성격은 원불교의 일원상 진리인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교리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보충적인 교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金道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