⑴ 불교에서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 열반이란 싼스끄리뜨 니르바나(nirvāṇa)의 음역이며, 니원(泥洹)ㆍ열반나(涅槃那) 등으로 음역하기도 하고, 멸도(滅度)ㆍ적멸(寂滅)ㆍ원적(圓寂), 또는 무위(無爲)ㆍ부작(不作)ㆍ무생(無生) 등으로도 의역한다. ‘(바람 따위를) 불다, 그치기 위하여 불다, 불어서 꺼뜨리다, (불 등을)끄다, 등의 의미를 지닌 어근.
열반의 본뜻은 ‘불어서 끄는 것’, ‘불어서 꺼진 상태’를 뜻하며, 마치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ㆍ고뇌가 소멸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때 비로소 적정(寂靜)한 최상의 안락(安樂)이 실현된다. 현대적인 의미로는 영원한 평안, 완전한 평화라고 할 수 있다. 남방의 팔리 불교에서는 조림(稠林)이 없는 것으로, 이 경우에도 번뇌의 숲이 없어진 상태를 열반이라고 한다.
부파불교(部派佛敎)에 이르러서는 석가불의 이상화ㆍ신격화에 따라 열반에 대한 생각도 변하여, 수행자가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이 세상에 생존하는 동안에는 완전한 열반을 체득하기란 어려운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생존하는 동안에 얻어진 열반은 불완전한 것이라고 보아 유여열반(有餘涅槃)이라 하며, 사후에 비로소 완전한 상태에 들어간다고 보아 무여열반(無餘涅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석가불과는 달리 열반의 경지가 아니라 아라한(阿羅漢:궁극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대승불교에서는 유여ㆍ무여열반 외에 본래자성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涅槃)ㆍ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을 주장했다. 전자는 일체중생의 심성(心性)이 본래 청정하다는 것으로, 진여(眞如) 그 자체임을 달관하여 안심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하며, 후자는 대승불교에서 이상으로 여기는 열반으로서 생사에도 머물지 않고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 것, 곧 자비와 지혜가 원만하게 갖춤을 뜻하는 비지원만(悲智圓滿), 또는 아무런 조작 없이 있는 그대로 운용됨을 뜻하는 임운무작(任運無作)의 불ㆍ보살의 상태를 말한다. 결국 열반이 어떤 특별한 경지로서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범부(凡夫)의 미혹이며, 열반은 유(有)도 무(無)도 아닌 공(空)으로서 윤회나 열반이나 어떤 구분도 없다는 것이다.
⑵ 스님의 죽음, 또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죽음을 불교적으로 높여 부르는 말로 사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