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교단의 창립 이소성대 일심합력 사무여한 창립정신의 의의
개요
원불교 창립 초기에 소태산대종사와 제자들이 여러 사업을 전개하면서 보여준 이념 또는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정신. 개교의 목적은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받아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함”(《정전》 개교의 동기)이며, 이는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 조화된 참문명세계가 곧 원불교에서 지향하는 일원세계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단 창립 초기, 영광에서 소태산과 창립제자들이 저축조합(貯蓄組合)ㆍ방언공사(防堰工事)ㆍ법인기도(法認祈禱)의 활동을 통해 나타난 이념적 토대를 말한다.
교단의 창립
원불교의 창립은 1916년(원기1) 소태산의 대각을 통한 구세경륜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교단이다. 당시는 3ㆍ1운동이 일어나기 3년 전으로 사회적 변혁이 요구되는 때이자 급변하는 역사의 전환기였다. 소태산은 일제의 침략 아래 민중이 희망을 잃고 갖은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지도강령을 개교표어로 내걸고 그들과 삶을 같이했다. 소태산은 그를 따르는 인물 가운데 8~9명의 표준제자를 정하고, 저축조합 등의 공동체를 구성했다.
무산자(無産者)인 그들에게 정신훈련과 생활혁신 등을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도록 지도했다. 근검저축과 허례폐지 등의 운동을 통하여 저축조합을 개설하고, 축적된 금액으로 방언공사를 시행하여 성공했으며, 도탄에 빠진 생령을 구하겠다는 대서원에서 시작한 혈인서천(血印誓天)의 기도로 법계인증(法界認證)을 받는 기적을 행한다. 소태산과 구인선진을 중심한 이 창립과정에 드러난 정신을 원불교 창립정신이라 부르며, 이를 이소성대(以小成大)ㆍ일심합력(一心合力)ㆍ사무여한(死無餘恨)으로 정리한다.
이소성대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이룬다는 뜻이다. 소태산은 구세사업이 시급함을 알았으나, 사업의 순서를 생각하여 표준제자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제자들을 지도하여 1917년(원기2) 8월에 저축조합을 창설했다. 그는 “우리가 장차 시방세계를 위해 함께 큰 공부와 사업을 하기로 하면, 먼저 공부할 비용과 사업할 자금을 예비하여야 하고, 예비를 하기로 하면 어떠한 기관과 조약을 세워야 할 것이므로, 이제 회상 기성(旣成)의 한 기관으로 저축조합을 설시하여 앞일을 준비하려 하노라”(《원불교교사》 제1편 제4장)고 했다.
이에 따라 모든 단원이 술ㆍ담배를 끊고 의복ㆍ음식 등을 절약한 대액(代額), 재래의 여러 명절 휴일을 줄여 특별노동 수입과 각 가정의 시미(匙米), 그간 실행해온 천제(天祭)도 폐지하여 그 소비 대액을 조합에 저축하기로 하고, 친히 조합장이 되어 실행을 장려했다. 이러한 기금에 숯장사와 소태산의 가산을 더하여 1년 안에 큰 자금을 이루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소태산은 “모든 사물이 작은 데서부터 커지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나니 이소성대는 천리의 원칙”(《대종경》 교단품30)이라고 밝히고, “이 세상에 크게 드러난 종교의 역사를 보더라도 처음 창립할 때에는 그 힘이 미약했으나 오랜 시일을 지내는 동안에 그 세력이 점차 확장되어 큰 종교들이 되었으며 다른 모든 사업도 또한 작은 힘이 쌓이고 쌓인 결과 그렇게 커진 것에 불과하나니”(《대종경》 교단품30)라고 했다.
모든 사업이 이소성대의 원리에 의해 발전한다고 간파하고 “우리가 이 회상을 창립 발전시키는 데도 이소성대의 정신으로 사심 없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무위이화로 큰 성과를 볼 것이니라”(《대종경》 교단품30)고 했다. 그러므로 교단 창립과정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은 있을 수 없었으며 근검절약을 통한 사심 없는 노력에 의할 뿐이었다. 소태산이 교단의 경제적 기초를 확립해 가는 과정을 보면 이소성대와 근검저축을 바탕으로 한 경제관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공부를 하는데에도 급속한 마음을 두지 말고 스승의 지도에 따라 순서를 밟아 진행하고 보면 마침내 성공의 지경에 이를 것이다”(《대종경》 교단품30)고 밝히고 “저 큰 바다의 물도 작은 방울 물이 합하여진 것이요 산하의 대지도 작은 티끌이 합하여 진 것이며, 제불제성의 대과(大果)를 이룬 것도 형상 없고 보이지도 않는 마음 적공을 합하여 이룬 것이니 큰 공부에 뜻하고 큰일을 착수한 사람은 먼저 작은 일부터 공(功)을 쌓아야 되나니라”(《대종경》 교단품44)고 했다.
경제면에서 뿐 아니라 인격완성에서도 이소성대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소성대는 교단의 경제관 사업관인 동시에 인격완성의 기본원리이며, 이를 실천하면 발전만을 계속하게 된다고 보았다.
일심합력
소태산과 제자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대단결을 이룩한 정신이다. 1918년(원기3) 3월 소태산은 저축조합에서 얻어진 기금으로 당시 형편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해면의 언막기 공사, 즉 방언공사에 착수했다. 소태산은 바닷물이 내왕하는 해면을 가리키며 “이것은 모든 사람이 버려 둔 바라, 우리가 언을 막아 논을 만들면 몇 해 안에 완전한 논이 될 뿐더러 적으나마 국가 사회의 생산에 한 도움도 될 것이다. 이러한 개척사업부터 시작하여 처음부터 공익의 길로 나아감이 어떠하냐”고 묻고, 제자들이 뜻을 합하여 시작한 것이다(《원불교교사》 제1편 제4장).
그러나 근동 사람들은 이를 알고 모두 냉소하며 또는 장차 성공하지 못할 것을 단언하여 장담하는 이도 있었지만, 제자들은 그 비평과 조소에 조금도 굴하지 아니하고, 용기를 더하고 뜻을 더욱 굳게 하여 일심합력으로 악전고투를 계속했다. 삼복염천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삭풍한설에는 추위를 헤치면서 한편은 인부들을 독촉하고 한편은 직접 흙짐을 져서 이듬해 3월에 준공을 보게 됨으로써 새 회상창립의 경제적 기초를 세우는 일대 사업을 이룩한 것이다.
소태산은 일심합력으로 이룩한 방언공사에 대하여 “저 사람들이 원래에 공부를 목적하고 온 것이므로 먼저 굳은 신심이 있고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니, 수만 년 불고하연 간석지를 개척하여 논을 만들기로 하매 이웃 사람들의 조소를 받으며 겸하여 노동의 경험도 없는 사람들로서 충분히 믿기 어려운 이 일을 할 때에 그것으로 참된 신심이 있고 없음을 알게 될 것이요, 또는 이 한 일의 시(始)와 종(終)을 볼 때에 앞으로 모든 사업을 성취할 힘이 있고 없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요, 또는 소비절약과 근로 작업으로 자작자급하는 방법을 보아서 복록(福祿)이 어디로부터 오는 근본을 알게 될 것이요, 또는 그 괴로운 일을 할 때에 솔성(率性)하는 법이 골라져서 스스로 괴로움을 이길 만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이 모든 생각으로 이 일을 착수시켰노라”(《대종경》 서품10)고 했다.
교단 창업에 있어서 경제적 토대를 마련과정에서 소태산과 제자들은 일심합력으로 영육쌍전(靈肉雙全) 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음을 밝혀준 것이다.
사무여한
죽어도 한이 없다는 뜻으로, 구인제자들의 생사관(生死觀)인 동시에 무아봉공(無我奉公) 정신의 극치이며 원불교 전무출신(專務出身)의 기본정신이다. 1919년(원기4) 3월 방언공사가 끝나자 소태산은 구인제자들을 모아놓고 “지금 물질문명은 그 세력이 날로 융성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은 날로 쇠약하여 개인, 가정, 사회, 국가가 모두 안정을 얻지 못하고 창생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지니 세계를 구할 뜻을 가진 우리로써 어찌 이를 범연히 생각할 수 있으리요…그대들도 이때를 당하여 전일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모든 사람의 정신이 물질에 끌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천지에 기도하여”(《대종경》 서품13)라고 하여 창생제도를 위한 기도를 명했다.
이리하여 기도가 계속되던 중 동년 7월 26일에 소태산은 기도하는 9인에게 “제군이 사실로 인류 및 세계를 위한다고 할진대 몸이 없어지더라도 우리의 정법이 세상에 드러나서 모든 창생이 도덕의 구원을 얻는다면 조금도 여한이 없이 그 일을 시작하겠는가”(《회보》 제43호)라고 제자들에게 물으니 9인은 한결같이 자기 한 몸을 희생함으로써 시방세계(十方世界)의 모든 중생이 영원한 행복을 얻게 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리하여 생사를 초월한 9인의 정성이 ‘사무여한’이라고 써 올린 증서에 백지혈인(白指血印)의 이적으로 나타나게 되자 소태산은 그들의 정신을 찬양하고 “이제 그대들의 몸은 곧 시방세계에 바친 몸이니 앞으로 모든 일을 진행할 때에 비록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할지라도 오직 오늘의 이 마음을 변하지 말고…그 끊임없는 마음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로지 힘쓰라”(《대종경》 서품14)고 했다. 사무여한 정신은 전 세계인류를 위한 대봉공(大奉公)정신의 극치이었으며 소태산은 이 정신의 힘으로 능히 일체생령을 구할 수 있다고 확언했던 것이다. 사무여한 정신을 실현할 때 영원한 생명은 약속되는 것이며, 원불교에서는 이를 전무출신의 기본정신으로 삼는다.
창립정신의 의의
세상의 모든 종교의 구세사업이 이루어지는데 있어서 기본정신이 있고, 이를 계승발전시킬 때 그 목적을 충실히 이룰 수 있다. 원불교 교단의 창교과정에서 소태산과 제자들은 이소성대ㆍ일심합력ㆍ사무여한의 정신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이루어 교단의 정초(定礎)를 튼튼하게 갖추었다.
《성가》의 ‘선진후진경애가’에서는 “영산 변산 익산 각지 가시밭길 헤치고 새 회상의 터전들을 닦아주신 선진님들 대종사님 받드시고 신성 단결 봉공으로 오직 한 길 창립 위해 천신만고 하시었네. 이소성대 세워주신 모든 법 모든 기관 선진님 선진님들 감사 감사합니다. 오대양 육대주의 거센 물결 박차고 일원상의 깃발들을 날려주실 후진님들 창립정신 이어받아 하나같이 뭉치어 오직 한 길 일원세계 혈심혈성 다해주오 일심합력 발전시킬 모든 법 모든 기관 후진님 후진진들 감사 감사합니다”(《원불교성가》 103장)라고 노래했다.
이소성대ㆍ일심합력ㆍ사무여한을 대신성ㆍ대단결ㆍ대봉공의 정신으로 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창립정신은 1966년(원기51) 원광중ㆍ고등학교의 운영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에 재학 중인 예비교무들이 중심이 되어 범교단적으로 창립정신 고취운동을 전개하여 난관을 타개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이를 기점으로 창립정신론이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창립정신에는 세 가지 외에 절대신봉ㆍ근검저축 등을 더해 논의하기도 한다. 〈柳聖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