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대사전„

원불교 용어사전

의두요목
[疑頭要目]

개요 역사 의두요목의 내용 의두연마의 의의

개요

의두는 진리를 깨치기 위한 의심머리라는 뜻으로, 화두(話頭)나 공안(公案) 등을 일컫는 말. 의두요목은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중에서 의심되는 조목을 간추려 정리한 20개의 항목을 말함. 《정전》에서는 정기훈련의 사리연구 과목으로 의두를 설정했는데, “의두는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이며 과거 불조(佛祖)의 화두 중에서 의심나는 제목을 연구하여 감정을 얻게 하는 것이니, 이는 연구의 깊은 경지를 밟는 공부인에게 사리간 명확한 분석을 얻도록 함이요”(《정전》 정기훈련법)라고 정의하고 있다.

역사

① 《수양연구요론》시대:1927년(원기12)에 발간된 《수양연구요론》은 전문수련서의 성격을 띠는데, ‘각항연구문목’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연구할 문목’은 137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계문을 비롯한 교리와 불조의 화두, 그리고 자연현상에 대한 의문 등이 망라되어 있다. ‘문목(問目)’이란 ‘의문요목’의 준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문목은 의두요목의 최초형태이다.

② 《보경육대요령》시대:1932년(원기17)에 발간된 《보경육대요령》을 《수양연구요론》과 대비하여 보면 사은사요ㆍ삼학팔조의 교의가 독립했으며, 그중에서 후일의 의두ㆍ성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문목’과 ‘성리’로 분화 정리되어 있다. 여기에서의 뚜렷한 특징은 ‘연구문목’의 비중이 대폭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③ 《불교정전》시대:1943년(원기28)에 출간된 《불교정전》에서는 ‘의두요목’을 47조로 정비하여 싣고 있다. 여기에서는 의두와 성리에 대하여 “의두라 함은 본회 교과서 내에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이며 기타 일체 인간사에 의심나는 제목을 이름이니, 어떠한 제목이든지 각자의 연구대로 그 해결안을 제출하여 감정을 얻게 하는 것으로써 이는 본회 초등교과서를 마치고 연구의 실지경(實地境)을 밟는 공부자에게 사리 간 명확한 분석을 얻도록 함이오. 성리라 함은 우주만유의 본래이치와 과거 불조의 이르신 천만 화두를 해결하여 알고자 함이오”라 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커다란 변화는 ‘문목’을 ‘의두요목’으로 전환한 점과 《수양연구요론》에서 확립된 137종의 문목이 ‘의두요목’으로 변경되면서 47조로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또한 성리에 대한 정의에 약간의 수정이 있다. 이에 따라 소태산의 구도과정과 연관된 자연현상에 대한 의문 문목이 거의 삭제되었으며, 불조의 공안이 주를 이루는 형태로 바뀌었다.

④ 《원불교교전》시대:1962년(원기47) 교단은 《정전》을 발간하면서 의두ㆍ성리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그로 인하여 의두ㆍ성리에 대한 개념이 크게 바뀐다. “의두는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이며 과거 불조의 화두 중에서 의심나는 제목을 연구하여 감정을 얻게 하는 것이니, 이는 연구의 깊은 경지를 밟는 공부인에게 사리간 명확한 분석을 얻도록 함이요, 성리는 우주만유의 본래이치와 우리의 자성원리를 해결하여 알자 함이요.” 여기서는 그 이전까지 성리에 해당되었던 ‘불조의 화두’를 의두로 옮겨 놓았다.

이로써 소태산이 ‘문목’으로부터 ‘성리’를 독립시키고 그 ‘성리’의 항목에서 화두의 수행길을 분명하게 밝혀 놓았던 것에서 핵심 내용인 화두를 제거해 버림으로써 성리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를 야기했다. 결과적으로 《원불교교전》시대 《정전》의 의두ㆍ성리의 정리는 《수양연구요론》으로부터 《불교정전》에 이르도록 일관되게 의두ㆍ성리가 지녀오던 본래의 정체성이 크게 변화했다. 또한 《불교정전》에서는47조목으로 줄었던 문목의 내용을 《정전》에서는 다시 간추려서 20조목으로 완성하고 있다.

의두요목의 내용

제1조 세존이 도솔천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왕궁가에 내리시며, 모태 중에서 중생제도하기를 마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제2조 세존이 탄생하사 천상천하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 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제3조 세존이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대중이 다 묵연하되 오직 가섭존자만이 얼굴에 미소를 띠거늘, 세존이 이르시되 내게 있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마하가섭에게 부치노라 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제4조 세존이 열반에 드실 때에 내가 녹야원으로부터 발제하에 이르기까지 이 중간에 일찍이 한 법도 설한바가 없노라 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제5조 만법이 하나에 돌아갔다 하니 하나 그것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제6조 만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은 것이 그 무엇인가.
제7조 만법을 통하여다가 한마음을 밝히라 했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제8조 옛 부처님이 나시기 전에 응연(凝然)히 한 상이 둥글었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제9조 부모에게 몸을 받기 전 몸은 그 어떠한 몸인가.
제10조 사람이 깊이 잠들어 꿈도 없는 때에는 그 아는 영지가 어느 곳에 있는가.
제11조 일체가 다 마음의 짓는 바라 했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제12조 마음이 곧 부처라 했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제13조 중생의 윤회되는 것과 모든 부처님의 해탈하는 것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제14조 잘 수행하는 사람은 자성을 떠나지 않는다 하니 어떠한 것이 자성을 떠나지 않는 공부인가.
제15조 마음과 성품과 이치와 기운의 동일한 점은 어떠하며 구분된 내역은 또한 어떠한가.
제16조 우주만물이 비롯이 있고 끝이 있는가, 비롯이 없고 끝이 없는가.
제17조 만물의 인과보복 되는 것이 현생일은 서로 알고 실행되려니와 후생일은 숙명(宿命)이 이미 매해서 피차가 서로 알지 못하거니 어떻게 보복이 되는가.
제18조 천지는 앎이 없으되 안다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제19조 열반을 얻은 사람은 그 영지가 이미 법신에 합했는데, 어찌하여 다시 개령(個靈)으로 나누어지며, 전신(前身) 후신(後身)의 표준이 있게 되는가.
제20조 나에게 한 권의 경전이 있으니 지묵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한 글자도 없으나 항상 광명을 나툰다 했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의두연마의 의의

수행의 목적은 우선 성품자리를 오득(悟得)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고, 일과 이치간에 걸림 없이 아는데 있다. 이 성품자리는 언어의 길이 끊어져 있으므로 직관(直觀)을 요한다. 이를 위해 소태산은 의두와 성리공부를 하게 하는데, 의두요목은 그 공부거리로서 불조의 화두를 간추려 놓은 것이다. 대부분의 이들 요목은 시간과 공간의 인과관계를 통해서는 모순으로 보이는 상징적인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의두와 성리의 공통점은 첫째 의두와 성리는 화두라는 연마의 대상을 갖는다는 점이다.

의두와 성리의 성립사를 보면 《수양연구요론》에서 최초의 137개 조항의 ‘문목’이 《보경육대요령》에서 47개로, 다시 《원불교교전》에서 20개로 줄어드는 과정에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의문들은 삭제되었으며 불조의 화두로 정착되고 있다. 그 의문들에 대하여 의두요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있으나 화두로 정선되었다는 점에서 성리와 의두는 그 공부대상이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의두요목 20조항을 성리요목이라 불러도 문제가 없다. 둘째 의두와 성리는 모두 신분의성의 원동력이 필요한 공부법이라는 점이다.

소태산은 “도가에서 공부인의 신성을 먼저 보는 것은 신(信)이 곧 법을 담는 그릇이 되고, 모든 의두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되며, 모든 계율을 지키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니, 신이 없는 공부는 마치 죽은 나무에 거름하는 것과 같아서 마침내 결과를 보지 못하나니라”(《대종경》 신성품7)고 하여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두를 해결하는 원동력은 동시에 성리를 해결하는 원동력으로 볼 수 있다. 신뿐 만이 아니라 분ㆍ의ㆍ성 모두가 의두와 성리를 해결하는 바탕이 된다. 의두와 성리의 차이점 또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의두와 성리는 연마의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소태산이 ‘화두’를 대상으로 하는 ‘문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경육대요령》에서 화두를 대상으로 하는 ‘성리’라는 훈련과목을 새로 독립한 것은, 범주의 문제가 아니고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의두는 분석적이며 성리는 관조적이다. 방법의 차이라는 점에서 화두라는 하나의 재료에서 두 가지 공부법이 탄생한 것이다. 화두를 포함한 모든 의문거리에 대하여 합리적인 이유들을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의두’의 방법론이라면, 화두 그 자체에 매달려 온갖 사유마저 초월하여 진경에 들게 하는 방법이 성리이다. 의두가 종래 선가에서 말하는 의리선적 성격을 지닌다면 성리는 여래선ㆍ조사선적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의두와 성리는 연마의 형태에 차이가 있다. 소태산은 의두 연마의 방법을 “근래에 선종 각파에서 선의 방법을 가지고 서로 시비를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그 가운데 단전주법을 취하여 수양하는 시간에는 온전히 수양만 하고 화두연마는 적당한 기회에 가끔 한 번씩 하라 하노니, 의두 깨치는 방법이 침울한 생각으로 오래 생각하는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명랑한 정신으로 기틀을 따라 연마하는 것이 그 힘이 도리어 더 우월한 까닭이니라”(《대종경》 수행품14)고 밝히고 있다.

원불교에서는 대개 의두연마를 아침 좌선 마지막에 하도록 하고 있는데 상시공부의 성격이 강한 것이다. 반면에 성리의 방법은 오직 화두와 내가 하나가 되어 일체가 되어 진경에 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정기공부에 적합하며 강력한 집중과 순일한 지속이 필요한 공부이다. 〈鄭玄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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