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불교의 인과설 원불교의 인과설
개요
⑴ 원인과 결과.
⑵ 우주만유의 일체의 현상은 상대적 의존관계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불교의 입장. 동시인과(同時因果)를 주장하는 입장과 이시적(異時的) 의존관계에서 선행(先行)하는 것을 인(因)이라 하고 후속(後續)하는 것을 과(果)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곧 인과란 시간적으로 보아 인이 먼저이고 과가 나중이라고 보는 것이 이시인과론이고, 묶어 놓은 갈대가 서로 의지하고 서 있는 것처럼 동시라고 보는 것이 동시인과론이다.
모든 인(因)은 연(緣)을 매개로 하여 과(果)를 맺게 되고, 모든 과(果)는 인(因)에 연속되어 있으며, 일체의 존재는 이 인과의 계열 가운데에 있어서 하나라도 독존(獨存)하여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일체의 우연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또 단멸(斷滅)될 이유가 일어나지 않는 한 하나라도 단멸할 일이 없이 부단히 존속한다고 본다. 사실 인과 과의 깊은 관련은 일상생활에서나 시대ㆍ지역을 넘어서 반드시 전제가 된다.
불교에서나 인도사상에서는 인간의 삶이나 행위를 주로 행위자 자신의 동기론(動機論)으로 설명하므로 인과론은 중히 여겨졌고 이러한 분석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인도사상에서 과(果)는 이미 인(因) 안에 포함되어 있어 그것이 외부로 나타났다고 보는 ‘인중유과론(因中有果論)’, 과(果)는 전혀 새로이 탄생했다고 생각하는 ‘인중무과론(因中無果論)’의 두 가지 설이 있다. 불교에서는 인과 과의 직결을 배격하고 그 사이에 조건을 세워 그것을 중시하는 한편 그 과정에도 깊이 배려한다. 이 조건을 ‘연(緣)’이라고 하고 이들 인과 연과 과의 관련이 불교사상의 근간이 되었다.
⑶ 과학을 비롯 철학이나 여러 학문은 이 두 사이에 일정한 법칙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주장하여 ‘인과율’을 그 기초에 둔다.
불교의 인과설
인과는 싼스끄리뜨 헤투팔라(hetu-phala)로 원인과 결과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일체의 현상은 상대적 의존관계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 관계 중에서 유식종(唯識宗) 같이 과미무체설(過未無體說)에 의해 동시인과(同時因果)를 주장하는 수도 있고, 이시적(異時的) 의존관계에서 후속(後續)하는 자를 과(果)라고 부르는 때도 있다. 따라서 모든 인은 연(緣)을 매개로 하여 과를 맺으며, 모든 과는 인에 연속되어 있으며 일체의 존재는 이 인과의 계열 가운데에 있어서 하나라도 독존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일체의 우연이라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또 단멸될 이유가 일어나지 않는 한 하나라도 단멸하는 일이 없이 부단히 존속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불교 인과설의 특징은 인연 연기(因緣緣起)를 주장하는 점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또한 저것이 있으며, 이것이 없으므로 또한 저것이 없다(此有故彼有 此無故彼無)”는 도리가 그것이다. 이 인연연기의 연쇄과정을 기본적으로 드러낸 것이 십이인연설이다. 원인에 의하여 결과가 규정되는 관계로서 취해진 표현이다. 부파불교에서는 원인, 그것을 보조하는 연, 또한 결과라는 세 가지 원칙을 들어 모든 현상을 검토함으로써 6인(六因)ㆍ4연(四緣)ㆍ5과(五果)를 들고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상호 의존관계라고 해석되어 어떠한 것이든지 실재하지 않으며, 상호 의존관계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상의상자설(相依相資說)을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불교 인과설의 특징은 인과 연의 2종을 들어 원인에서 결과가 나온다고 보는 이인설(二因說)을 주장하는 점이다. 한 개의 원인에서 한 개의 결과가 나온다고 하는 일인설(一因說)도 그것은 근본적으로 불교의 인과설과 다르다.
따라서 유일신(唯一神)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하는 유태교나 기독교나 이슬람 등의 일인설은 불교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인이란 현상의 내부에 있는 원인, 곧 결과를 낳게 하는 직접적 원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결과를 낳을 수 없다. 외부적인 원인이 돕지 않으면 어떠한 결과도 낳을 수 없다. 밖에서부터의 조건이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제외될 수 없는 외적 원인을 연이라 하며 이를 중시한다. 이것을 무력증상연(無力增上緣)이라고도 부른다.
원불교의 인과설
소태산대종사는 대각의 심경을 말한 가운데 “생멸 없는 도(道)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대종경》 서품1)라고 했다. 소태산은 이러한 진리를 바탕으로 교문(敎門)을 열 때에도 인과보응의 신앙문과 진공묘유의 수행문으로 교리를 체계화했다. 따라서 원불교의 인과사상은 소태산의 대각을 계기로 밝혀진 것이며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관계(窮極的 關係)로 이를 드러냈다. 따라서 인과원리는 인간의 자각을 통하여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임을 깨달았을 때 들어난 진리인 것이다. 소태산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대각을 하게 된다면 이 우주는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상존함을 알 수 있게 된다. 원불교의 인과사상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
① 원불교의 인과사상은 대체로 불교의 인과설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종사 대각의 내용에서 인과를 밝혔고(《대종경》 서품1), 또한 교법의 주체를 불교에다 둔다고 한 관점에서(《대종경》 서품2)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불법은 천하의 큰 도라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생사의 큰일을 해결하며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고 수행의 길을 갖추어서 능히 모든 교법에 뛰어난 바 있나니라”(《대종경》 서품3)고 한 표현에서 더욱 불교의 인과설이 대종사의 대각에 의하여 드러난 것과 일치함을 증명해 주고 있다.
② 원불교의 인과사상은 인과를 존재론적으로 해명하려는 점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소태산은 인과의 원리에 대해 “우주의 진리는 원래 생멸이 없이 길이길이 돌고 도는지라,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이 되고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이 되며, 주는 사람이 곧 받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이 곧 주는 사람이 되나니, 이것이 만고에 변함 없는 상도(常道)니라”(《대종경》 인과품1)고 밝혔다. 곧 이 우주는 시작(生)도 끝(死)도 없이 영원토록 순환한다. 그 도(道) 곧 원리(原理)는 변함없이 돌고 돈다는 것이다. 죽고 나며, 가고 오며, 주고받음이 항상 도는 것이니 이는 곧 우주의 인과이치가 있기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③ 원불교의 인과사상은 음양상승(陰陽相勝)의 도를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특징이 있다. 소태산은 ‘일원상법어’에서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정전》 일원상)라 했고, ‘참회문’에서는 “음양상승의 도를 따라 선행자는 후일에 상생의 과보를 받고 악행자는 후일에 상극의 과보를 받고 악행자는 후일에 상극의 과보를 받는 것이니”(《정전》 참회문)라고 했다. 또한 소태산은 “우주에 음양상승하는 도를 따라 인간에 선악인과의 보응이 있게 되나니”라고 했다. 여기에서 원불교의 인과설을 이해함에는 《주역》사상을 파악하지 않으면 근원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원불교의 인과 사상은 《주역》을 깊이 파악해 들어간 사람이면 궁극에 있어서 그 인과성을 알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朴光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