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대사전„

원불교 용어사전

자성
[自性]

개요 불교의 자성 원불교의 자성

개요

인간에 갖추어진 본성이라는 의미. 이외에 성품ㆍ불성ㆍ심지(心地) 등 다양한 표현도 대체로 자성과 상통되는 개념이다.

불교의 자성

불교적 전통에서 사용된 자성의 기본적인 의미는 만유제법(萬有諸法)의 체성(體性), 또는 체상(體相)을 말한다. 만유제법의 각 사물에는 불변하는 성질이 있는 바 이를 자성이라 한다. 법상종(法相宗) 또는 구사종(俱舍宗)에서는 자상(自相)이라고도 한다. 이를테면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의 삼선근(三善根)이나 참(튔)과 괴(愧)의 심작용(心作用) 같은 것은 그 자성이 선하므로 자성선(自性善)이라 하고, 자기의 본성은 청정한 진여(眞如)이므로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 함과 같다. 각자의 체성을 자성이라 하고 모양을 자상(自相)이라고도 한다.

용수(龍樹)는 《중론(中論)》에서 자성이 모든 존재의 불변하며 고칠 수 없는 본성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용수는 모든 존재가 연기에 의해 생성 변화한다는 의미에서 불변하는 실체성을 지닌 자성을 부정하고 만유의 실상은 자성이 없는 공이라는(無自性空) 관점을 고수했다. 그는 인간본성에 대한 어떤 규정도 반대하고 생(生)ㆍ멸(滅)ㆍ단(斷)ㆍ상(常)ㆍ일(一)ㆍ이(異)ㆍ래(來)ㆍ출(出)의 8종의 편견을 벗어난 공(空)의 세계를 중도실상(中道實相)이라고 본다. 이를 팔불중도(八不中道)라고 말한다. 이는 소극적 부정의 방법을 통해 실상을 드러내려는 특유의 접근방법에 의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대승사상에는 중생에게도 누구나 여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함장되어 있다는 여래장(如來藏) 사상이 대두되었으며 불성론(佛性論)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는 인간본성에 무한한 지혜덕상이 갖추어져 있다는 적극적 입론이라고 볼 수 있다. 후에는 대체로 한편으로 모든 편견을 벗어난 공의 실상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모든 지혜덕상이 갖추어져 있다는 불성론을 병행하여 주장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선불교의 육조혜능은 특유의 자성청정론을 통해 본래청정한 자성을 깨달아 성불한다는 종지를 세웠다.

원시불교에서는 부처에 의한 중생제도를 강조했으며 후에 대승불교로 접어들면서 보살과 스승에 의한 제도로 넓혀졌으나 혜능은 자성의 자각을 통한 자신제도에 역점을 두었다. 사홍서원(四弘誓願)과 삼귀의(三歸依)를 해석할 때에도 자성을 자신의 마음중심으로 풀이했다. 매우 자력적이며,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성불의 요체를 찾는 가르침을 펼쳤다. 그는 불법의 공부는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에 달려 있으므로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이고 미혹되면 중생일 뿐이라고 했다. 자성이 미혹되면 중생이요 자성이 각성되면 부처라는 관점을 지녔다(自性覺則是佛 自性迷則是衆生).

따라서 전통적 방법을 통한 수행보다는 자성을 깨달아 해탈과 자유에 직입하는 길을 제시했다. 그는 자성이 만법의 근원이며 만법을 모두 자성에서 나온 것이라는 보고 망념만 제거하면 바로 청정한 본성이 발현된다는 관점을 지녔다. 이에 전통적인 수행방법의 한계를 지적하고 재가출가에 국한되는 것도 거부했다.

원불교의 자성

원불교의 교전에서 사용된 자성이란 개념도 대체로 육조 혜능의 관점과 상통된다. 소태산대종사는 “모든 분별이 항상 정(定)을 여의지 아니하여 육근을 작용하는 바가 다 공적영지(空寂靈知)의 자성(自性)에 부합이 될 것이니”(《정전》 무시선법)라고 하여 공적영지를 자성의 본질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정전》 ‘일상수행의 요법’ 1, 2, 3조에서는 마음의 요란함ㆍ어리석음ㆍ그름을 닦아 자성의 정ㆍ혜ㆍ계를 세울 것을 강조했는데(《정전》 일상수행의 요법), 이는 혜능의 사상에 연원이 있다. 여기서는 심지는 마음이 발하는 바탕이라는 측면에 역점이 있는 표현으로서 자성과 대체로 상통되는 개념이다.

다만 자성의 정ㆍ혜ㆍ계가 내포하는 내용을 볼 때 자성은 심지에 비할 때 마음바탕과 작용을 포함하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예전》 천도법문에서도 “부처와 조사(祖師)는 자성의 본래를 각득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었으므로 이 천업을 돌파하고 육도와 사생을 자기 마음대로 수용하나 범부와 중생은 자성의 본래와 마음의 자유를 얻지 못한 관계로 이 천업에 끌려 무량고를 받게 되므로”라고 말한다. 자성을 깨달아 체현함의 여하에 따라 부처와 중생을 구별하고 있다.

정토종에서는 염불을 통하여 부처님의 신력에 의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타력적인 믿음을 강조했다. 혜능은 이에 대해 외부에 있는 서방정토의 개념을 부인하고 마음이 청정한 자성이 바로 정토라고 말한다. 《정전》에서는 자심(自心)의 미타(彌陀)를 발견하여 자성극락을 이루기를 목적으로 하는 자력적인 의미로 풀이한다. 나무아미타불의 의미는 원래 무량수각(無量壽覺)에 귀의한다는 뜻으로서 우리의 마음은 원래 생멸이 없으므로 무량수(無量壽)이며 그 가운데 소소영령(昭昭靈靈)하여 매(昧)하지 않는 바가 있으니 그것이 곧 각(覺)이다. 이를 가리켜 자심미타라 한다.

또한 우리의 자성은 원래 청정하여 죄복이 돈공(頓空)하고 고뇌가 영멸한 체성자리요, 여여자연하여 변함이 없는 절대자리인데 염불을 함으로써 흩어진 정신, 산란한 마음을 일념(一念)으로 만들어 본연에 합일한 경지가 자성극락이다(《정전》 염불법).

《예전》 예문편 ‘참회게(懺悔偈)’의 이참(理懺)에는 “죄는 자성(일정한 실체)이 없이 마음에 따라 일어나니 마음이 멸하면 죄 또한 소멸되네. 죄도 없고 마음도 멸하여 두 가지가 다 공하면 이를 참된 참회라 이름하네(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罪亡心滅兩俱空 是卽名謂眞懺悔)”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말한 자성은 고정된 실체나 불변의 성질이라는 의미로서 용수가 부정했던 무자성공에서의 자성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죄가 일시적인 번뇌의 소산으로 불변하는 뿌리가 약함을 나타내는 표현이라 할 수 있으며 청정한 본성이라는 의미와는 다르다. 〈李聖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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