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역사 활동
개요
원불교 남자교무들의 부인으로 구성된 단체. 원불교에서는 전무출신을 할 수 있게 가정경제의 후원 및 책임을 지는 이를 권장부라고 부른다. 정토회는 이러한 권장부들의 신앙과 수행 친목을 위한 단체이다.
역사
1955년(원기40) 6월 2일 정산종사로부터 ‘진흙속의 연꽃이 되라’는 부촉과 함께 정식 ‘정토회’라 명명 받고 12명이 발기인총회(여청운・박길선・이칠성・이화진・권동화・이영훈・임영전・윤성규・김성윤・장귀영・최충인・이주완)를 열고, 1963년(원기48) 8월 정토회 제1회 훈련을 시작했다. 1965년(원기50) 5월 정기총회에서 회장 박길선, 부회장 이영훈이 선출되었고, 이때 회칙 등을 제정한 후 1973년(원기58) 4월 전북 익산시 남중동(남중동 1가 147-48)에 교당을 마련하고 초대 교무로 이지일이 부임했다. 1975년(원기60) 4월 6일 이지일이 이임하고 김복환이 부임했고, 이로부터 근검절약으로 남중동과 동산동에 각각 90평, 5백평의 교당 부지를 마련했다.
1975년 8월에 정토회원들의 종합회관을 건립하라는 정산의 유시를 받들어 원광의료원 자리에 회관부지 2천 5백평을 마련했으나, 원광대학교의 발전에 따라 그 땅을 양도하고 대신 현재 위치인 익산시 무왕로 820번지에 교당의 대지 1천 3백 60평과 신동에 7백평의 대지를 대토받아서 회관을 건축했다. 현재의 정토회관이 건축되기 이전에는 1977년(원기62) 11월 남중동 1가에 대지 90평, 건평 2백 22평의 3층 슬라브 건물을 완공하여 자체교당을 마련한 후, 1978년(원기63) 10월 정토회관 설립 1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촌교당을 연원교당으로 설립하기도 했다.
1986년(원기71) 3대 교무가 부임한 후 계속되는 회원증가와 함께 제반시설의 운용한계 등이 문제로 제기되어, 1988년(원기73) 1월 정토회종합회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건축기금 조성을 위한 전 회원들의 적금불입과 아울러 1989년(원기74) 8월 회관 건축위원회에서 신동 현 위치에 회관을 건축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완공된 정토회종합회관은 대지 1천 6백 28평에 연건평 6백 35평으로 지하에는 청소년법당과 도서실이, 지상1층에는 어린이집, 2층은 생활관과 소법당, 3층은 대법당이 각각 자리하고 있어 6백여 정토회원들의 공부 사업 실천도량으로 활용되고 있다.
활동
정토회는 1975년(원기60) 정토장학회를 설립하여 전무출신 자녀들에게 장학금 지급 및 기금조성을 해 왔으며, 1999년(원기84)에는 재단법인 원불교정토장학회로 발전하여 매년 전무출신 자녀들의 공교육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의 정기훈련을 통해 정토회원들의 신앙과 수행을 돈독히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金道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