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대사전„

원불교 용어사전

조선불교혁신론
[朝鮮佛敎革新論]

개요 간행 및 변천 구성과 내용 조선불교혁신론의 혁신사상 조선불교혁신론의 의의

개요

소태산대종사 친저로 1920년(원기5)경 부안 봉래정사에서 초안하여 1935년(원기20) 발간된 원불교 초기교서 중의 하나이며, 불교혁신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조선불교혁신론》은 《불법연구회규약》(1927년, 원기12), 《수양연구요론》(1927년, 원기12), 《보경육대요령》(1932년, 원기17), 《불법연구회통치조단규약》(1932년, 원기17), 《삼대요령》(1934년, 원기19)에 이어 교과서 형태로 간행된 단행본 교서이다. 주요 내용은 총론을 시작으로 총 7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정전》에는 권1 제1편 개선론에 그 내용이 일부 확장되어 11장으로 담겨져 있으며 대부분의 내용들은 현재 《대종경》 서품 15~19장에 수록되어 있고, 《불교정전》 편수 당시 보충된 내용은 《대종경》의 다른 품을 비롯하여 《정전》의 ‘일원상’, ‘심고와 기도’, ‘불공하는 법’ 등에 담겨져 있다. 이 책자는 저자 겸 발행인 전세권의 이름으로 1935년(원기20) 전북 익산의 진곡(眞谷)인쇄소에서 출간되었다.

총 43쪽 분량의 내용에 국한문혼용체의 세로글로 구성되어 있고 한자 옆에 한글을 병기하고 있다. 《불교정전》(1943년, 원기28)에는 권1 제1편 개선론이라는 제하에 총 9쪽의 《조선불교혁신론》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불교정전》에서는 제7장 과거의 예법을 현재의 예법으로, 8장 진리신앙과 석존숭배, 9장 불공하는 법, 10장 법신불일원상조성법 등이 확충되었다.

간행 및 변천

《조선불교혁신론》 편찬 간행의 배경에는 먼저 소태산의 불교에 대한 인식으로 시작된다. 소태산이 대각을 이룬 후 불교에 대해 밝힌 부분은 다음과 같다. “모든 종교의 경전을 두루 열람하시다가 금강경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서가모니불은 진실로 성인들 중의 성인이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 얻은 경로를 돌아본다면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바 많으므로 나의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하노라 하시고 장차 회상을 열 때에도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대종경》 서품2).

또 “이제는 우리가 배울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요, 후진을 가르칠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니 그대들은 먼저 이 불법의 대의를 연구해서 그 진리를 깨치는데 노력하라, 내가 진작 이 불법의 진리를 알았으나 그대들의 정도가 아직 그 진리분석에 못 미친 바 있고 또는 불교가 이 나라에서 여러 백 년 동안 천대를 받아 온 끝이라 누구를 막론하고 불교의 명칭을 가진 데에는 존경하는 뜻이 적게 된지라 열리지 못한 인심에 시대의 존경을 받지 못할까 하여…일체중생의 혜복 두 길을 인도하기로 하면 이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야 할 것이며 뿐만 아니라 불교는 장차 세계적 주교가 될 것이니라”(《대종경》 서품15) 하였다.

이렇듯 불법을 주체 삼는 한편 석가모니불을 성중성으로 높이 평가하여 연원불로 삼는 반면에 불교혁신을 과감히 주장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법은 천하의 큰 도라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생사의 큰일을 해결하며,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고 수행의 길을 갖추어서 능히 모든 교법에 뛰어난 바 있나니라”(《대종경》 서품3)고 했고, 뿐만 아니라 세존의 지혜와 능력에 대해 높이 찬양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대종경》 서품17). 그런데 소태산이 이렇듯 불법에 연원을 두는 한편 불교혁신의 기치를 내걸고 《조선불교혁신론》을 저술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대각 후 《금강경》을 비롯한 종교 전적을 봉래산 주석기에 이미 참고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소태산의 현실 불교에 대한 인식이 보다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1919년(원기4) 금산사에 들른 후 봉래산 월명암에 들어가게 되면서부터이다. 봉래산 월명암에 들어가게 된 주요한 동기는 재래불법의 교리와 제도를 실지 참고하여 장차 혁신할 교단의 교리와 제도를 초안하기 위한 것이었다(《불법연구회창건사》). 소태산이 변산 월명암을 택하게 된 배경은 월명암이 거사불교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암자였기 때문이었다. 유마거사나 부설거사 등 재가불자의 수행에 대해 높이 평가한 면에서나 소태산을 석두거사(石頭居士)ㆍ불려거사(不侶居士)라고 한 흔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게 변산에서 교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기성불교의 제반 형태를 비롯하여 당시 불교개혁운동을 주창했던 한용운ㆍ백용성ㆍ백학명ㆍ박한영ㆍ송경허 등에 의한 조선불교 혁신에 대한 논의를 간접적으로 접촉했을 것으로 보인다. 《원불교교사》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때에 대종사 또한 밖으로 승려들과 교제하사 재래 사원의 모든 법도를 일일이 청취하시고 안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더불어 새 회상 첫 교서 초안에 분망하시니 《조선불교혁신론》과 《수양연구요론》 등이 차례로 초안되었다.

혁신론은 재래의 불교를 시대에 맞도록 하여 대중 교화를 하자는 것이요, …혁신론은 1935년(원기20) 4월 발간하여 각각 상당한동안 회상 초기교서의 일부로 사용되었다.” 소태산이 승려들과 교제하면서 접한 것들 중에는 한용운의 주저인 《불교대전》을 비롯하여, 백학명을 중심으로 한 선지식과의 교류를 통해 불교계의 실상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백학명은 반농반선의 작무선을 전개한 인물로 소태산의 혁신운동 내지는 새로운 교단창업에 깊은 이해와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당시 간행된 초기교서로는 《불법연구회규약》(1927년, 원기12), 《수양연구요론》(1927년, 원기12), 《보경육대요령》(1932년, 원기17), 《삼대요령》(1934년, 원기19) 등이 있다.

특히 《조선불교혁신론》이 나오기 전에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1913)은 불교유신사상을 담고 있어 당시 불교개혁에 대한 정황을 잘 제시해 주고 있다. 한편 《조선불교혁신론》이 편찬 간행되기 전후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종교정황을 보면, 일제의 조선에 대한 식민통치가 무단통치, 문화통치를 거쳐 전시체제로 돌입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도 탄압이 고조된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가 포교규칙을 제정 반포하여 종교를 탄압하기 시작한 것은 1915년 무렵부터이다. 1915년 8월 반포된 포교규칙은 종교와 교육의 분리, 종교기관 설립의 허가제 등을 통하여 종교를 탄압했다.

더구나 1920년대는 일제의 문화통치기로 경제적 수탈,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말살, 대륙침략을 위한 조선의 병참기지화 등으로 식민통치가 한층 심화된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1925년(원기10) 조선총독부는 조선총독부령 83호인 포교규칙을 반포하여 조선 내에서 불교ㆍ그리스도교ㆍ신도만을 종교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종교로 인정하지 않는 종교탄압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종교단체의 분열 어용화에 의한 민족주의자의 배제정책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1910년대 무단통치하에서 민족주의자들이 대부분 종교단체에 의지해 활동하면서, 삼일운동에서 천도교ㆍ그리스도교 등 종교단체가 대중결집의 매개체 역할을 수행한데 기인한다.

따라서 이런 종교단체를 분열시키고 재편성 어용화를 통한 민족주의자를 배제하는 방법이 되었다. 1920년 초 일제가 동원한 종교단체의 어용화 방법을 보면 지도층 내부의 대립을 의도적으로 조작하여 분열을 꾀하고 그 대립 항쟁을 이용하여 민족주의자를 배제하는 방법, 신도수가 증가하는 종교에 대해서는 분열공작을 하고, 종교단체를 분열시킬 때는 반드시 친일분자를 이용하여 약화시키며, 종교단체 분열에 사용된 슬로간은 항상 혁신ㆍ개혁과 종교의 사회화라는 명목을 내걸고, 기성종교를 약화시켜 나갔다. 이른바 유사종교를 적극 보호 장려하는 등의 정책을 폈다.

이런 종교탄압의 일환으로 출현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1935년(원기20) 간행된 《조선의 유사종교》이다. 이상과 같이 당시 정치 사회, 및 종교계의 상황이 일제의 제국주의 침략정치의 틀 내에서 1920년~35년대 한국의 종교상황은 유사종교의 해산 속에서 한민족에게 민중종교의 새로운 메시지를 요청받고 있었다.

《조선불교혁신론》이 간행될 당시에는 총7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불교정전》이 간행되면서 〈개선론〉이라는 제하에 총11장으로 확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불교혁신론》과 《불교정전》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혁신론》의 4장 ‘외방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가 개선론에서는 ‘외방의 불교를 우리의 불교로’로, 6장 ‘분열된 교과과목을 통일하기로’가 개선론에서는 ‘편벽된 수행을 원만한 수행으로’로 각각 바뀌어져 있으며, 〈개선론〉에 별도로 추가된 것은 제7장 ‘과거 예법을 현재의 예법으로’가 추가되었다. 그 밖에 8장 진리신앙과 석존숭배, 9장 불공하는 법, 10장 일원상 조성법, 11장 심고와 기도가 각각 별도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불교혁신론》의 내용이 오늘날 《정전》 및 《대종경》에 수용된 상황을 보면, 《조선불교혁신론》의 1, 2장은 《대종경》 서품 16장에, 3장이 《대종경》에서는 서품 17장에, 4, 5장은 서품 18장에, 6장은 서품 19장에 각각 담겨 있으며, 7장 심고와 기도는 《정전》 수행편 9장 ‘심고와 기도’, ‘불공하는 법’은 《대종경》 교의품 12, 13, 14에 각각 편입되어 있는 반면 일원상조성법은 생략되었다.

구성과 내용

《조선불교혁신론》은 ‘과거 조선사회의 불법에 대한 견해’, ‘조선승려의 실생활’, ‘서가모니불의 지혜와 능력’, ‘외방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분열된 교화과목을 통일하기로’, ‘등상불 숭배를 일원상 숭배로’ 등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943년 편정된 《불교정전》에서는 〈개선론〉편이라는 제하에 그리고 1962년 발행된 《원불교교전》 편수에서는 《정전》과 《대종경》에 각각 그 내용이 수록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을 개관하면 1, 2장에서는 한국불교에 대한 그릇된 인식, 토착화되지 못한 점을 들고, 3장에서는 세존의 위대한 점을 11개 조항으로 밝히고 있으며, 4, 5장은 ‘외방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불교의 시대화ㆍ생활화ㆍ대중화를 제창하는 혁신론을 제시하고 있다. 6장은 분열된 수행과목을 삼학으로 통일하고, 7장에서는 등상불신앙을 일원상 신앙으로 전환한 이유를 각각 제시하고 있다.

각 장의 내용을 좀더 자세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총론에서는 조선의 불교가 가지고 있는 폐단을 지적하고 발전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미래의 불법이 나아가야 할 대강을 제시하고 있다. 혁신의 방향으로는 외방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 과거 불교를 현재와 미래의 불교로, 산중승려의 불교를 일반대중의 불교로 혁신할 것을 밝히고 있다.

① 과거조선사회의 불법에 대한 견해:과거 조선사회의 불법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유교의 세력에 밀려 산중 불교화 된 점, 죄를 사하고 복을 빌기 위해 불공을 하는 모습, 승려는 독신삭발, 염불 송경하며 걸식하는가 하면 세속의 귀천을 막론하고 문안을 올리며, 불살생, 어육주초의 금지, 승려가 되는 자의 부류 등이 오랜 동안 습관화되어 있어 불교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② 조선승려의 실생활:조선 승려의 실생활을 말하게 된 배경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말을 하고자 하는 이 사람도 과거 조선사회의 한 사람으로 불교에 대한 상식이 없다가 어떠한 생각 어떤 인연으로 불교를 신앙하는 동시에 불교에 대한 약간의 상식이 있게 됨으로써 조선승려의 실생활을 말하게 되었다”고 하여 어떤 생각, 어떤 인연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밝히지 않지만 당시 불교 승려들과의 접촉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조선승려의 실생활을 대체적으로 들자면, 세속을 벗어나 산수풍경이 좋은 곳에 사원을 건축하고 불상을 모시고 몇 사람의 동지와 함께 수도하며, 의식은 세속사람들에 의지하면서, 위의를 갖춰 염불ㆍ송경ㆍ좌선하는 생활, 출세간 위주의 교리, 제도에다 산중 승려의 수도생활은 천상선관(天上仙官)의 생활이라고 했다.

③ 세존의 지혜와 능력:“부처님께서는 생사 없는 이치와 다생겁래에 한없는 생이 있는 줄을 더 알으시고, 천지만물의 본래 이치며, 자신 제도 후 시방세계 일체중생을 제도하실 능력이 있으시며, 중생이 받는 모든 고락의 원인을 다 아시고 복락이 없으면 이를 오게 하는 능력이 있으시고, 지혜가 어두워지면 밝게 하는 능력, 탐ㆍ진ㆍ치에 끌리지 않으시며, 있는데 당할 때에 없는 데까지 알으시고 없는 데를 당할 때 있는 데까지 알으시며 육도의 변화하는 이치를 알으시고, 사물을 당할 때 자리이타로 하시다 못하시게 되면 이해와 생사를 불고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자신의 복락을 삼으시며 우주만유를 다 소유로 삼고 시방세계가 다 집이요, 일체중생을 모두 권속으로 삼으신다.”

④ 외방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불교는 인도, 중국을 거쳐 조선에 들어와 인도 숙어 명사, 중국어 명사 숙어가 많고 일반적으로 배우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운 한문으로 경전이 구성되어 있어 유ㆍ무식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르치기 어려운데, 조선의 문자에 혹 한문을 가하여 교리와 제도의 정선 교과서를 정하고 이를 깨치게 한 후에 과거 경전을 참고하여 가르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⑤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재래 조선불교는 배척을 받을 때 출세간 위주의 교리와 제도가 조직되어 불교의 대중화가 어려웠다. 출세간 본위의 교리와 제도가 세간생활에 맞지 않는 것은 인간이 없는 데에 교당을 두고 있으며, 의식주 생활에서도 사농공상 원직업을 놓고 불공ㆍ시주ㆍ동령에 의한 생활, 결혼의 금지, 출세간 생활 위주로 교리가 제정되어 있으나 앞으로는 세간, 출세간을 따지지 않고 공부와 사업의 등급만 따르도록 하며 수도하는 처소도 신자를 따라 어느 곳이든지 건설하며, 의식주 생활도 각자 처지에 따를 것이며, 결혼도 자의에 맡기고, 교육과 수도를 적절히 함으로써 불교의 대중화, 생활화를 제언하고 있다. 이는 공부의 요도와 인생의 요도로서 결함 없는 제도를 운전하게 한 것이다.

⑥ 분열된 교화과목을 통일하기로:재래불교에서는 각 종파마다 신자에게 가르치는 과목은 경전, 화두를 들고 좌선하는 법, 염불, 주문, 불공하는 법을 각각 주장함으로써 초입자에게 신성과 신자의 통일을 방해하고 불교위신의 타락과 발전에 장애가 되므로 삼대과목으로 통일하여 신앙과 수행을 진행하면 교리와 신자가 자연 통일될 것이다.

⑦ 등상불신앙을 불성 일원상으로:등상불 신앙이 갖는 문제점을 예를 들어 지적하면서 일원상은 천만가지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사실로 드러나도록 가르칠 수 있고 천지만물 죄복의 당처에 불공함으로써 진리적 불성 일원상을 불공의 대상으로 삼도록 가르칠 수 있다고 함으로써 과거 등상불 신앙을 불성 일원상 신앙으로 혁신하자는 것이다. 말미에 불성 일원상 조성법과 심고와 기도에 대한 설명이 첨부되어 있다.

조선불교혁신론의 혁신사상

이상의 내용을 통해 《조선불교혁신론》에 담겨진 불교혁신사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태산의 불교혁신의 뜻은 불교의 본질은 드러내되 교리와 제도는 시대와 인심에 따라 시대화ㆍ대중화ㆍ생활화하는 방향으로 개혁하자는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첫째 교리제도의 측면에서 불상숭배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불성 일원상 신앙을 제안한다. 등상불 신앙의 허구성은 인류의 지견 정도에 따라 죄복의 근원처에 대한 설명이 달라져야 함을 지적하고 시대인류의 지견이 장년기에 접어들면 사리분별이 정확해지고 합리적 사고가 지배하므로 인격숭배에서 진리신앙으로 전환될 것을 전망하고 있다. 또한 종래 불교의 수행방법을 보면 종파 간 다양한 방법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재래사원에서는 염불종은 언제나 염불만 하고 교종은 언제나 간경만 하며 선종은 언제나 좌선만하고 율종은 언제나 계만 지키면서 같은 불법 가운데 시비장단만 말하고 있으나 사실은 이런 것들이 모두 계ㆍ정ㆍ혜 삼학의 한 과목들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병진하게 하되 매일 새벽에는 좌선을 하게 하고 낮과 밤에는 경전ㆍ강연ㆍ회화ㆍ의두ㆍ성리ㆍ일기ㆍ염불 등을 때에 맞추어 하게 하여 이 여러 가지 과정으로 고루 훈련하나니 누구든지 이대로 정진한다면 재래의 훈련에 비하여 몇 배 이상의 실 효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대종경》 교의품20)고 지적하고 있다.

소태산이 이런 각종 각파로 분리된 종래의 수행방법을 통합하여 제시한 것이 삼학수행법이다. 매일 새벽에는 좌선하고 낮과 밤에는 경전ㆍ강연ㆍ회화ㆍ의두ㆍ성리ㆍ일기ㆍ염불 등을 고루 병진하게 한 것이다. 둘째 불법의 시대화를 위해 조선사회에 불교가 토착화되려면 불법의 시대적 적합성 즉, 불법을 인도하는 경전을 유무식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배우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함을 지적한다. 셋째 불교제도가 출세간위주의 소수인의 불교를 생활불교로 개혁할 것을 주창한다. 그리하여 사농공상의 차별 없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도록 대중화하여 교리에서도 견성, 양성만을 주체로 할 것이 아니라 솔성을 가하여 삼강령을 주체로 하도록 함으로써 출세간과 세간생활에 필요한 공부의 요도와 인생의 요도를 병진하도록 하고 있다.

조선불교혁신론의 의의

《조선불교혁신론》은 종교사적 의의와 원불교의 역사적 측면에서의 의의로 고찰 할 수 있다.

① 종교사적 의의:일제강점기에 불교혁신과 관련된 주장은 다양하게 전개된바 있다. 예를 들면 권상로의 《조선불교개혁론》(1912~1913),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1913), 이영재의 《조선불교혁신론》(1922), 김벽옹의 《조선불교기우론》(1927) 등이 그것이다. 권상로의 《조선불교개혁론》이 한일합방 직후인 1910년, 일본 조동종과 맹약을 체결한 수구파인 원종을 대변하는 점진적인 개혁론이라면,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은 조동종과의 맹약에 반대하며 임제종의 주역인 유신당의 입장을 취하고 있고, 이영재의 《조선불교혁신론》은 종교학도로서 개혁론이며, 김벽옹의 《조선불교기우론》은 불교유신운동이 일어난 지 수십 년 후 불교현상에 대한 반성론으로 당시 승려들에게 전한 메시지이다.

이에 반하여 소태산의 《조선불교혁신론》은 새로운 불교교단의 성립을 전제로 한 운동이념이었다. 그리고 불교교단에서 이미 제기된 위의 개혁론은 입장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승단의 개혁에 초점을 두고 의식개혁, 제도정비, 승려교육, 선풍진작, 포교개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반하여 소태산의 《조선불교혁신론》은 외방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분열된 교화과목의 통일, 등상불 숭배를 불성 일원상으로라는 네 가지 개혁과제를 제기하고 있는 점에서 구별된다.

한마디로 불법의 시대화ㆍ대중화ㆍ생활화를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불교계에서 제기한 구체적인 현실적 과제보다는 불법이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데 주안을 둔 것이다. 오히려 구체적인 과제는 교단의 삼대사업목표를 제시하면서 교화, 교육, 자선을 병진할 때 결함 없이 할 것이라는 부촉에서 언급되는 면을 볼 수 있다.(《대종경》 부촉품15)

② 원불교의 역사적인 측면:첫째 원불교의 불교와의 관계를 연원불로서 규정함으로써 불타관을 정립해주고 있다. 둘째 현실적인 교단으로서 불교 즉, 교단불교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개혁을 통해 새 회상의 제도이념이 현실사회에서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의 방향을 설정해주고 있다. 셋째 불교본질의 신앙과 수행에 있는 바 법신불 신앙과 아울러 삼학 병진수행을 정립해주고 있다. 끝으로 교리의 체계화, 교서결집이 시대화ㆍ생활화ㆍ대중화의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필요성을 제기해주고 있다. 〈金慧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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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혁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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