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대사전„

원불교 용어사전

좌선법
[坐禪法]

개요 좌선법의 역사적 변천 원불교 좌선의 원리 좌선의 방법 좌선의 결과 단전주의 필요

개요

앉아서 선(禪)하는 법. 주로 불교에서 수행의 중요한 방법으로 행했으며, 그 연원은 멀리 인도의 고대시대부터 있었던 수행방법이다. 원불교에서는 좌선법을 정기훈련(定期訓練) 과목 중 하나로 정하고 선의 원형을 심신간에 익히도록 하는 공부길이다(《정전》 좌선법).

좌선법을 과거에는 참선법(參禪法)・참구법(參究法)・수선법(修禪法)・벽관법(壁觀法)・지관법(止觀法) 등 다양하게 불렀다. 서양에서는 명상(Meditation)이라고 번역하여 좌선을 이해한다. 그러나 명상은 생각이 있는(有念) 상태에 중심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좌선은 생각을 내도 안되고 생각이 없어도 안되는 상태이니 명상과 좌선을 그 본질상 상당히 거리가 있는 방법이나 외견상 비슷해 보인다. 원불교의 좌선법에서는 우리의 본래 순연한 정신 즉 적적성성(寂寂惺惺)한 상태를 길러 내자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전》 수행편에 수록되어 있다.

좌선법의 역사적 변천

인도인들이 더위를 견디기 위한 신체적 이유로 선을 하기도 하는가 하면 정신적으로 해탈(解脫)하기 위해서 선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방법적으로 고행(苦行)하려는 고행선(苦行禪)이 있었는가 하면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낙천(樂天)을 하여 온 낙행선(樂行禪)도 있었다. 불교이전의 브라만교에 ‘사무색정(四無色定)’이라는 좌선법이 있었다. ‘사무색정’의 최고의 경지는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다.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다는 그것마저 없는 경지이다. 분별망상이 다 끊어지고 분별망상이 끊어졌다는 그것마저 없는 것이다. 이 경지를 깨치면 몸을 버리고 영으로만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 이것이 브라만교의 궁극적인 선정의 목적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선 선은 다양한 방법으로 또는 극단적인 방법으로만 전해져 왔다. 석가모니도 출가해서 초기에는 두 사람의 브라만교 수행인의 지도에 따라 좌선을 하여 ‘비상비비상처정’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이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선정을 중단했다. 여기에 대하여 석가모니(佛陀) 좌선의 중도적 방법에 의해 대각을 이루고 중도에 의한 좌선만이 정각(正覺)할 수 있는 도리라고 보았다. 석가모니는 6년의 설산고행과정에서 ‘내가 생사를 해탈하려는 것은 이 세상에 살면서 생사를 해탈하려는 것이지 천상세계에 주해서 해탈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보리수 아래에서 좌선을 하여 도를 깨달았다.

비록 석가모니가 기존의 선의 방법을 부정하기는 했지만 먼저 브라만교의 ‘사무색정’의 좌선에서 얻어진 정력(定力)이 깨달음의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브라만교의 좌선법은 우빠니샤드 철학에서 체계를 세웠다. 석가모니 당시를 전후해서 육사외도(六師外道)와 육파철학(六派哲學)의 사상도 대체로 육체적인 단련에 중심을 두었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육체적인 단련보다 정신적인 단련을 중심으로 하는 좌선법을 강조하여 좌선의 목적을 생사해탈에 두었다. 팔정도(八正道)의 정정(正定)은 바른 선정 곧 중도적인 선법이다.

석가모니의 열반 후 100년경에 부파불교가 일어나며, 부파불교는 우빠니샤드 철학의 영향을 받으며, ‘사무색정’과 같은 ‘구차제정(九次弟定)’이라는 좌선법을 발달시킨다. 그의 대승불교로 들어오면서 석가모니 좌선의 정신을 다시 강조하게 된다. 선사상은 중국 양무제 당시 남인도에서 온 보리달마(菩提達摩)에 의해 중국불교의 한 흐름을 이루게 되는데, 그는 숭산 소림사(崇山少林寺)에서 면벽(面壁)좌선을 9년간이나 행하면서 좌선수행을 중심한 선불교의 토대를 마련했다. 선은 본래 모든 사상이 하나인 이치를 알아 하나의 도리에 드는 것이 특징이라 하나 근기(根機)의 차에 따라 선의 방법과 방향이 다양하게 발전했다.

우두(牛頭)선・북종(北宗)선・남종(南宗)선・황벽(黃檗)선・임제(臨濟)선・조동(曺洞)선・운문(雲門)선・위앙(仰)선 등 여러 종파의 가풍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그중에 특기할 만한 선풍은 송대에 임제종의 간화선(看話禪)과 조동종의 묵조선(照禪)이 대조적으로 크게 부각되었다. 대혜종고(大慧宗챋)에 의해서 성숙된 간화선풍은 화두(話頭)를 잡고 참구하는 것으로, 화두를 통해 깊이 의심하되 의심하는 생각도 놓고 염염상속(念念相續)하여 마침내 한 덩어리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는 본연 소식을 찾는 방법이었다.

굉지정각(宏智正覺)에 의해서 이룩된 묵조선풍은 좌선할 때 화두를 들지 아니하고 오직 묵묵히 관조하여 분별없는 가운데 성성(惺惺)하고 역역(歷歷)한 본연지(本然地)를 깨닫는 것이었다. 이들이 선풍을 이끌며 발전했는데, 서로 독특한 선쿵을 선양하기 위해서 간화선가는 묵조선풍을 무기(無記)의 사선(死禪)이라고 논박하고, 묵조선가는 간화선을 호의(狐疑)의 망선(妄禪)이라고 지적하며 논쟁이 격한 가운데 오늘날에 이르렀다. 간화선에서 일정한 공안(公案)의 화두를 드는 요령은 의식을 화두에 응집시켜 여타의 모든 생각이 조금도 개입되지 않도록 치열하게 지속시켜나가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선하든 악하든 평상시에 자신을 지배했던 내용들을 제거하여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

화두를 드는 방법의 핵심은 화두가 사유분별의 대상이 아니라 의단(疑團) 또는 의정(疑情)으로 뭉치게 해야 하며, 이 의단이 타파되면 할 일을 다 마치게 되는 것이다. 묵조선은 적묵 영조(寂靈照)한 본래의 마음에 사무치는 것으로, 묵()하고 조(照)하는 좌선 가운데 본래적인 마음의 작용이 있다고 본다. 곧 좌선하는 그대로가 비추어보는 작용과 다르지 않은 궁극적인 경지라는 것이다. 묵묵히 말을 잊으면 소소영령하게 앞에 나타난다. 언어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좌선 수행을 한 결과로 모든 것의 진실이 실현된다.

묵조의 도리가 원만하게 되면 연꽃이 피는 것 같고 꿈에서 깨어난 것 같으며, 모든 물줄기는 바다로 흘러가고 온갖 봉우리는 뫼를 향해 뻗어나가는 것과 같은 경지이다. 묵조가 완성됨에 의하여 모든 존재가 작위(作爲)가 없는 자연스러운 본래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떤 존재가 대상으로 다가와도 그 성품은 허공과 같으며, 사물의 경계와 접촉하지 않고도 알며 대상을 마주치지 않고도 비추는 것이다. 간화선은 견성(見性)을 목적으로 하며 묵조선은 마음을 비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불교의 흐름에는 신라 후대에 선불교가 전래된 이래 지방호족의 종교로 각광을 받으면서 선법이 발달되었고, 고려에서는 의천의 교관겸수(敎觀兼修), 보조지눌의 정혜쌍수(定慧雙修)가 선풍을 대표하는 성격을 지니며, 고려말 태고보우 이후는 사자상승(師資相承)의 선맥을 계승하고 있다. 조선시대 이후는 선일원화(禪一元化) 가운데 선・교(禪敎)의 가르침을 두루 수용하고 있는데, 전통불교의 흐름을 대표하는 교단이 조계종(曹溪宗)・태고종(太古宗)인 것처럼, 임제선풍의 간화선이 한국불교 선풍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원불교 좌선의 원리

좌선의 공통적 성격은 어떠한 방법으로나 마음을 일경(一境)에 집주(集注)하는 길을 제시하여 온 점이다(心一境住:samdhi). 그러므로 좌선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집주했으며, 집주의 방법은 많으나 대략 열거하면 미간(眉間)・정상(頂上)・비단(鼻端)・제간(臍間)・기식(氣息)・불상(佛想)・월륜(月輪)・아자(阿字)・부정(不淨)・화두・제심(制心)・묵조・단전(丹田) 등을 들 수 있다. 이중에 마음을 두부(頭部)나 외경(外境)에 주하면 망념이 동(動)하고 기운 안정이 잘되지 아니하며 심일경주하려는 본연의 뜻이 잘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정전》에 제시했다.

여기에 대하여 단전주(丹田住:아랫배에 주하는 것)는 사념(思念)이 동하지도 아니하고 기운이 잘 내리며 안정을 쉽게 얻는 법이 되며 묵조나 간화의 방법적인 허점을 극복할 수 있는 선이다. 단전주선의 특징은 좌선할 때 화두를 들지 아니하는 점에서 묵조선과 상통하나 좌선을 마치고 정신이 상쾌한 때 화두를 궁굴려 나가는 것이 차이가 있다. 그 뜻은 마음이 화두에 짓눌리지 아니하고 좌선은 좌선대로 전일하여 심신간에 더욱 건전해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 좌선은 정기훈련 11과목 중의 하나이다.

“좌선은 기운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지키기 위해 마음과 기운을 단전에 주하되 한 생각이라는 주착도 없이 하여 오직 원적무별(圓寂無別)한 진경에 그쳐 있도록 함이니 이는 사람의 순연한 근본정신을 양성하는 방법이요”(《정전》 정기훈련법)라 했다. 두렷하고 고요해서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원래의 마음을 찾는 것이 좌선인 것이다. 좌선은 정신수양과목에 속한다. 좌선은 수행인에 있어서 기본적인 수행방법이다. 왜냐하면 좌선은 마음을 비우고 키우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정전》 ‘좌선의 요지’에 의하면 “좌선이라 함은 마음에 있어 망념(妄念)을 쉬고 진성(眞性)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에 있어 화기(火氣)를 내리게 하고 수기(水氣)를 오르게 하는 방법이니, 망념이 쉰즉 수기가 오르고 수기가 오른즉 망념이 쉬어서 몸과 마음이 한결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리라”했다. 이를 요약하면 식망현진(息妄現眞)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 할 수 있다. 좌선은 정신수양의 정할 때 공부법이다. 정신수양 공부는 정할 때는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한다.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는 기본적인 방법이 좌선으로, 주로 새벽에 외경이 고요할 때 원적무별한 진경에 들게 하는 공부가 좌선이다.

좌선은 천념만념이라는 잡념을 일념으로 통일시켜 일념이라는 흔적도 없는 지극한 경지에 사무치는 것으로, ‘좌선의 요지’에서는 ‘대범 좌선이라 하면’부터 ‘몸과 마음이 한결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리라’까지는 좌선의 원리를 밝히고, ‘그러나 만일 망념이 쉬지 아니한즉’부터 ‘청정한 수기를 불어내기 위한 공부니라’까지는 좌선의 목적 또는 좌선의 필요성을 밝혔다. 그리고 좌선의 원리를 두 가지로 밝혔는데, 하나는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다. 진성이라는 참 성품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불교의 좌선의 내용을 수용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몸에 있어 화기를 내리게 하고 수기를 오르게 하는 것으로, 이는 도교의 연단(練丹)법을 수용한 것이다. 식망현진이 마음을 기르는 것(養心法)이라면 수승화강은 기운을 기르는(養生法) 공부라 할 수 있다. 좌선의 원리에도 영육쌍전의 원리가 들어 있다. 소태산대종사는 심성(心性)수양과 기질(氣質)수양이 밝히고 있는데(《대종경》 수행품16), 좌선법은 심성수양과 기질수양을 병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불교의 좌선법은 식망현진에 주체를 두면서 수승화강을 병행한다. 수승화강이 되지 않고 식망현진이 될 수 없으며 또한 식망현진이 되지 않고 수승화강이 될 수 없다.

첫째 식망현진 수승화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표현상에서 양자가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망념이 쉬면 맑은 기운인 수기가 오르고 수기가 오르면 잡념인 망념이 쉬게 되어, 몸과 마음이 한결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맑은 물이 솟아오르면 흐린 물이 가라 앉게 되고 흐린 물이 가라 앉게 되면 맑은 물이 드러나게 됨과 같은 원리이다.

그러므로 ‘망념이 쉬지 아니한즉 불기운이 항상 위로 올라서 온몸의 수기를 태우고 정신의 광명을 덮을지니 사람의 몸 운전하는 것이 마치 저 기계와 같아서 수화의 기운이 아니고는 도저히 한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할 것인바’(《정전》 좌선의 요지)라고 했다. 사람의 심신작용은 곧 수화작용이다. 좌선은 바로 수화작용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둘째 수기와 화기의 조화(調和)는 음양상승의 기운에 근거한다. 소태산은 “눈 한번 뜨고 감는 것과 숨 한번 내쉬고 들이쉬는 것 하나하나가 음양상승의 기운이다”(박창기, 《법설집》)고 했다. 들이쉬는 숨은 조금 길게 하고 내쉬는 숨은 조금 짧게 하는 것은 음양상승의 기운에 의해서 골라지는 것이다. 불기운을 내리고 물 기운을 오르게 하는 것도 음양상승의 기운에 의해서 골라지는 것이다.

셋째 수승화강이 식망현진에 크게 작용한다. 수승화강되는 이치를 묻는 제자에게 소태산은 “물의 성질은 아래로 내려오는 동시에 그 기운이 서늘하고 맑으며 불의 성질은 위로 오르는 동시에 그 기운이 덥고 탁하나니 사람이 만일 번거한 생각을 일어내어 기운이 오르면 머리가 덥고 정신이 탁하여 진액(津液)이 마르는 것은 불기운이 오르고 물 기운이 내리는 연고이요 만일 생각이 잠자고 기운이 평순(平順)하면 머리가 서늘하고 정신이 명랑하여 맑은 침이 입속에 도나니 이는 물 기운이 오르고 불기운이 내리는 연고이니라”(《대종경》 수행품15)고 했다. 불기운이 오르면 정신이 탁해지므로, 물 기운을 오르게 해서 불기운을 내리면 기운이 평순해져서 머리가 서늘하고 정신이 명랑해지는 것이다.

좌선의 방법

《정전》 ‘좌선법’에는 좌선의 방법이 9가지로 밝혀져 있다. 이를 요약하면 바른 자세로 기운 고르기(調身),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 고르기(調息), 망념을 쉬고 진성을 기르는 마음 고르기(調心)로 나눌 수 있다. 그 원리는 적적성성이며, 그 방법은 단전주이다. 단전주법은 도교의 연단법과 유사하나 연단법은 기(氣)단련에 중심을 두었지만, 원불교의 단전주법은 심(心)단련에 중심을 두면서도 신(身)단련을 겸한다.

좌선의 방법

1조:머리와 허리를 곧게 하여 앉은 자세를 바르게 한다. 바른 자세로 오래도록 앉아 있을 수 있는 기질을 단련해야 한다. 평소에 기질을 강인하게 하며 좌선 전에 몸을 풀어 물기운과 불기운이 골라지도록 하여 졸음이 오지 않도록 한다.

2조: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대중을 잡는다. 좌선의 기초로 정신 집중의 단련을 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마음 집중을 하면 산란한 마음이 없어진다. 강하게 느끼는 곳에 마음을 집중하면 집중력이 강해진다. 집중력이 강해지면 마음이 강해진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마음 집중을 한다. “전신의 힘을 단전에 툭 부리어 일념의 주착도 없이 다만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잡되 방심이 되면 그 기운이 풀어지나니 곧 다시 챙겨서 기운 주하기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단전은 하단전을 말하며 이곳에 전신의 힘을 툭 부리어 기운 주해 있는 대중을 잡는 것이다. 주해 있는 대중으로 호흡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3조:호흡을 고르게 하되 들이쉬는 숨은 조금 길고 강하게 하며 내쉬는 숨은 조금 짧고 약하게 하라고 했다. 불교의 《대안반수의경》에서의 호흡법은 내쉬는 숨은 길고 마시는 숨은 짧게 하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호흡법은 인도의 무더운 기운을 길게 마시면 건강에 해로움이 되므로 짧게 하라고 한 것 같다. 도교의 호흡법은 마시는 숨은 길게 하고 내쉬는 숨은 짧게 하는 호흡법과 마시는 숨은 짧게 하고 내쉬는 숨은 길게 하는 호흡법 등이 있다. 원불교의 호흡법은 이 중에서 마시는 숨은 길게 하고 내쉬는 숨은 짧게 하는 흡장호단법(吸長呼短法)과 상통한다. 단전주법에서 들이쉬는 숨은 조금 길고 내쉬는 숨은 조금 짧게 하는 것은 이러한 호흡이라야 단전주가 잘되기 때문이다.

4조:눈을 뜨는 것이 졸음을 방지하는데 필요하나 적적성성한 경지에 들면 감아도 본다.

5조:입안에 맑은 침이 나오면 가득히 모아 삼켜 내린다. 몸에 수화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 밑에서 올라오는 물기운이 감로수를 이룬다. 이를 많이 삼켜 내리면 원기가 충실해진다.

6조:적적성성한 진경에 사무치게 한다. 소태산은 “적적한 가운데 성성함은 옳고…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은 옳고…선의 강령이 되나니라”(《대종경》 수행품12)고 했다. 그러므로 ‘정신은 항상 적적한 가운데 성성함을 가지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을 가질지니’라고 했다. 적적한 가운데 성성함을 갖는다는 것은 마음을 텅 비워 지극히 고요한 경지에 사무치면서 정신이 신령스러워지는 것이다.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을 갖는 것은 마음을 신령스럽게 작용하되 마음의 본바탕이 텅 비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7조:망념이 일어나면 단전에 기운 주하는 대중을 챙긴다. 생각은 한순간에 두 번 일어날 수 없는 것이므로 기운 주하는 대중을 챙기면 망념은 사라진다.

8조:몸이 조금 가려워도 자연스럽게 내버려둔다. 조금 가려운 것은 혈맥이 관통되는 것이다. 관통되는 것은 기운이 골라지는 것이다.

9조:이상한 기틀과 신기한 자취를 대범스럽게 넘긴다. 이상한 기틀이란 신통묘술이며 신기한 자취란 환상적 현상이다. 여기에 끌리면 큰 정력(定力)을 얻을 수 없다. 요망한 일로 생각하여 담담하게 지나쳐버려야 한다. 이 고비를 넘겨야 진경에 이르게 된다.

좌선의 결과

좌선공부를 “오래오래 계속하면 필경 물아(物我)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오직 원적무별한 진경에 그쳐서 다시없는 심락(心樂)을 누리게 되리라”(《정전》 좌선의 방법) 했다. 좌선을 지극하게 하면 만물과 내가 하나가 되어 모든 것에 걸림이 없으며 시간과 처소를 초월하여 생사해탈이 되는 것이다.

‘좌선의 공덕’은 ‘좌선의 결과’이며, 열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①경거망동하는 일이 차차 없어지고, ②육근동작에 순서를 얻고, ③병고가 감소되며 얼굴이 윤활해지고, ④기억력이 좋아지고, ⑤인내력이 생기고, ⑥착심이 없어지고, ⑦사심이 정심으로 변하고, ⑧자성의 혜광(慧光)이 나타나고, ⑨극락을 수용하고, ⑩생사에 자유를 얻는 것 등이다.

좌선의 공덕 중 앞의 5개 조목은 기질수양에 관계되며 뒤의 5개 조목은 심성수양에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원불교 좌선법은 양심법과 양생법을 수용하여 영육쌍전의 좌선법을 형성한 것이다. 이 가운데 몇 조목을 자세하게 밝힌다.

2조:병고가 감소되고 얼굴이 윤활해진다. 기운을 단전에 주하면 불기운이 내리고 물기운이 올라 육체의 기능이 잘 조화되어 병고가 감소된다. 그리고 정력을 낭비하지 않고 원기를 충실히 하므로 병고가 감소되어 수명을 안보한다. 얼굴이 윤활해지는 것은 수화의 기운이 골라져서 윤택해지는 것이다.

8조:자성의 혜광이 나타난다. 불교에서는 계정혜가 순서가 있다. 계를 지키면 심신이 청정해지고 심신이 청정하면 선정(禪定)이 잘된다. 선정이 잘되면 자성의 혜광이 솟아난다. 《수심정경》에서는 좌선을 잘하면 “정신 기운이 차고 차서 맑아지고 정신의 광명이 빛나고 빛나서 밝아진다”고 했다. 소태산은 “영통이라 보고 듣고 생각하지 아니하여도 천지만물의 변태와 인간 삼세의 인과보응을 여실히 알게 된다”(《대종경》 불지품10)고 했다.

9조:극락을 수용한다. ‘네 마음이 죄복과 고락을 초월한 자리에 그쳐 있으면 그 자리가 곧 극락이요…마음이 항상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면 길이 극락생활을 하게 되고’(《대종경》 변의품10)라고 했다. 좌선을 지극하게 하면 죄복과 고락을 초월하게 되고 마음이 항상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게 된다. 그러므로 극락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10조:생사를 자유로 한다. ‘시간과 처소를 잊는다는 것’ 《정전》 좌선의 방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다. 생에 대한 애착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시간의 얽매임이며 나라는 육체에 대한 집착은 공간의 얽매임이다. 좌선을 지극하게 하면 이러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생사를 자유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밝힌 간화선과 묵조선은 온종일 앉아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활동할 때는 하기 어려운 것이다. 간화선에서 화두를 간하는 것은 활동할 때 한다고 한다. 그것은 오직 화두만 간하는 것이지 다른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원불교에서는 아침에는 좌선을 하고 낮에 활동할 때도 좌선할 때의 일심을 그대로 계속하는 것이다.

단전주의 필요

《정전》 ‘단전주의 필요’에 의하면 원불교에서 단전주법을 강조하는가 원리가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기운을 단전에 주한 즉 생각이 동하지 아니하고 기운도 잘 내리게 되어 안정을 얻기 쉽기 때문이라 밝히고 있다. 단전주법을 반대하는 입장에 대해서도 ‘간화선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 단전주법을 무기(無記)의 사선(死禪)에 빠진다 하여 비난을 하기도 하나 간화선은 사람을 따라 임시의 방편은 될지언정 일반적으로 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라 하고, ‘화두만 오래 계속하면 기운이 올라 병을 얻기가 쉽고 또한 화두에 근본적으로 의심이 걸리지 않는 사람은 선에 취미를 잘 얻지 못한다’고 했다.

따라서 ‘선을 할 때에는 선을 하고 연구를 할 때에는 연구를 하여 정과 혜를 쌍전’시키기 위해 원불교에서는 좌선시간에는 단전주법으로 오롯이 좌선을 하고 좌선 후 정신이 맑을 때 화두연마를 권장하고 있다. ‘공적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맑은 정신으로 화두를 연마하기 때문이며 ‘분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단전주로 깊은 정에 들기 때문이다. 동정 없는 진여성을 체득한다는 것은 정할 때는 나가대정이라는 진여의 경지를 체험하는 것이며 동할 때는 일심으로 그 일 그 일에서 끌리지 않은 진여의 경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韓正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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