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대사전„

원불교 용어사전

최도화
[崔道華, 1883~1954]

본명은 인경. 법호는 삼타원(三陀圓). 법훈은 대호법. 전북 임실군 지사면 금평리 개금실에서 부친 순화(順化)와 모친 진정만옥(陳正滿玉)의 일곱자매 중 6녀로 출생. 13세에 원 없는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비관하여 28세에 동네 방죽에 투신자살을 기도, 지나가던 여승에 의해 구해져 그로부터 출가하여 한강변 종남산 미타사, 계룡산 동학사에서 나반존자 주력수행을 했다. 이후 태을주(太乙呪) 수련을 하다가 각지 용한 기도터를 찾아다니며 기도하는 한편 비단장수를 하며 절집의 화주 노릇도 했다.

간곡한 기도와 간병으로 진안 좌포 김승지의 폐병에 걸린 아들을 낫게 하여 신임을 얻어 만덕산 산제당과 그 일대의 산전을 관리하게 되면서 임실 개금실의 가족들을 이주시켰다. 최도화는 산등 넘어 미륵사에 내왕하며 화주 노릇을 하게 되고 여기서 정산종사를 만나 생불님으로 받들게 되며, 변산 봉래정사에서 소태산대종사를 뵙고 왕생불님을 만난 법열로 교화, 진안 마령의 전삼삼ㆍ전음광 모자를 이끌어 전주로 이사하게 하여 전주에 회상 창립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익산에서 불법연구회를 창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소태산은 최도화를 길잡이로 하여 서울에 가서 박사시화를 통해 이동진화ㆍ이공주 등의 창립인연들을 만나게 된다. 정산은 최도화에 대해 ‘전북 회상과 서울 회상의 총연원’이라고 했다. 최도화는 거진출진으로서, 공식 직명은 ‘행상 순교(行商巡敎)’로 319명의 입교 연원을 달았다. 타고난 강인한 기질, 담이 차고 한번 하기로 한 일은 기어이 끝을 보고 마는 성격에 주선력과 계획성이 있어 회상 창립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최도화는 미륵불의 출세와 용화회상 건설에 관심이 많았다(《대종경》 전망품16). 소태산을 미륵불로 믿음에 추호의 의심이 없으며 궁색하게 사는 양하운 대사모에게 집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아들 조갑종이 전무출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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