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사상 및 영향
개요
송대 성리학자 주돈이(周敦頤)가 〈태극도(太極圖)〉를 해설한 도설(圖說)로 그의 우주론(宇宙論)과 인성론(人性論)을 249자(字)로 설명했다. 〈태극도(太極圖)〉는 다섯 층으로 나누어져 있고 이를 설명하는 도설 또한 다섯 문단으로 되어 있다.
사상 및 영향
도에서 첫째 맨 위층은 무극이며, 둘째 층은 음양을 품고 있는 태극으로 검은 색은 음을, 흰색은 양을 나타낸다. 셋째 층은 오행을 나타낸 것이며, 하나의 작은 원은 오행의 묘합(妙合)을 의미한다. 넷째 층에 있는 원은 천지의 이기(二氣)를 나타내며, 맨 아래 다섯째 층의 원은 만물의 화생(化生)을 의미한다. 《태극도설》은 ‘무극이태극’으로 시작된다. 유교경전(儒敎經傳)에서 ‘태극’이라는 용어가 처음 쓰인 것은 《주역》 계사전의 ‘역유태극시생양의(易有太極 是生兩儀)’이다. 《주역》에서 태극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체로 원기가 아직 분화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했다.
당나라 공영달(孔穎達)은 《주역정의(周易正義)》에서 “태극은 천지가 분화하기 전의 원기를 말한다”(太極謂天地未分前之元氣)라고 주장했다. 송(宋) 초기의 역학은 이러한 해석을 계승했다. ‘무극’이란 용어는 주돈이 이전의 유교경전에는 보이지 않고, 《노자(老子)》에 ‘상덕불벌복귀우무극’(常德不伐復歸于無極), 《장자》에 ‘입무궁지문이유무극지야(入無窮之門以遊無極之野)’ 등 도가(道家)에서 쓰였다. 도가에서 유래한 무극과 태극에 대한 이해와 그 관계에 대한 견해는 유학자들의 중요한 관심사의 하나였다.
《태극도설》은 성리학 체계 정립에 깊이 영향을 미쳤다. 주자(朱子)는 ‘무극’의 ‘무’를 소리ㆍ냄새방향ㆍ형체 등이 없다는 뜻으로 설명하여, 무극과 태극을 ‘무형이유리(無形而有理)’라고 해석했다. 그는 태극의 극은 지극(至極)의 뜻이므로 무극이라고만 하면 공적(空寂)으로 빠져서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고, 태극이라고만 하면 일물(一物)과 같이 생각되어 버릴 폐단이 있다고 하여 ‘무극이태극’을 본체(本體)의 양면으로 보았다. 주자의 해석에 따르면 태극의 동정에 의해 음양이 있게 되고 오행이 되며 만물이 생성변화 한다.
동정은 한없이 순환하는 것으로 만물의 생성변화 또한 무궁하다. 무궁한 만물은 그 근본을 소급하면 태극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태극은 결코 만물을 초월하여 있지 않고 오히려 모든 만물에 내재한다. 음양오행이 교차하여 운행하는 가운데 인간은 빼어난 기를 얻고 인간의 마음은 가장 영묘하여 그 성(性)의 온전함을 잃지 않는다. 인간에 내재한 태극은 인극(人極)이다. 사람의 오성(五性)은 오행의 덕에 배합된다. 선악이 있게 되는 것은 품부 받은 기의 청탁에 의한 기질에 따라 외물에 응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다만 성인은 빼어난 기를 받아 일동일정이 모두 정도(正道)에 맞기 때문에 이를 중정인의(中正仁義)라고 한다. 중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으로 인(仁)과 함께 태극의 체(體)이며 정(靜)이다. 정(正)ㆍ의(義)는 태극의 용(用)이며 동(動)이다. 그러나 주자 이후 도 및 도설에 대하여 여러 의견이 도출되었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주자의 해설에 이의(異義)를 제기하는 것, 둘째 태극도 및 《태극도설》이 주돈이가 지은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 셋째 태극도 및 《태극도설》은 주돈이가 지은 것이지만 유가 계통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첫째 경우는 주자가 태극과 음양을 나누어 둘이라고 본 이원론(二元論)에 대한 반박이다. 주자는 태극이 음양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일시 할 수 없다고 보았다. 태극은 이(理)요 음양은 기(氣)이다. 만물의 변화는 음양 동정에 의한 것이며 만물을 변화시키는 원인은 태극, 곧 이다. 그러므로 이기의 관계는 논리적으로 이선기후(理先氣後)의 입장이 강했다. 그러나 주자의 견해에 반박하는 학자들은 오직 하나의 기(氣)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주역》에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고 했으니 도는 곧 태극이요 태극은 곧 기이다. 태극에서 음양이 생기고 오행이 생기고 만물이 됨은 하나의 기가 변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는 기 자체의 조리(條理)일 뿐 이다.
둘째 《태극도설》이 주돈이의 저술이 아니라고 하는 입장에서 주자가 《태극도설》을 중시함에 반대한 것은 육구연(陸九淵, 1139~1192)이다. 그는 《태극도설》의 견해가 주돈이의 저서인 《통서(通書)》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만일 주돈이가 지은 것이라 하더라도 아직 학문이 완숙하지 못했을 때의 저술이라고 단언했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제 문제를 중심으로 주륙(朱陸)의 학파가 나누어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셋째 《태극도설》 자체가 유가가 아닌 도가나 불가 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러한 의견은 《송사(宋史)》 유림전(儒林傳)에 근거를 둔다. 유림전의 주진전(朱震傳)에 의하면 진단(陳巽)이 선천도(先天圖)를 전하고, 그로부터 도사(道士)들을 거쳐 주돈이에게 전했다고 한다. 또 《송원학안(宋元學案)》에 의하면, 진단으로부터 선천도가 전해지고 무극도(無極圖)와 선천도가 주돈이에게 전해졌으며, 주돈이는 또 선천지지게(先天地之偈)를 승려 수애(壽涯)에게서 받았다고 한다. 이견이 있으나 주돈이의 태극도는 대체로 남송(南宋) 초기의 도사 진단에게서 전해 받은 것으로 전한다.
다만 무극도는 그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던 것을 주돈이가 《주역》에 근거하여 순서를 바꾸고 이름도 태극도라고 하여 유가비전(儒家秘傳)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태극도설》은 도가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돈이가 유가적인 사유에 맞게 수정한 것이다. 한편 〈태극선천지도〉자체도 《주역》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가사상의 핵심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는 주장이 유학자들의 입장이다. 대표적인 주해(注解)로는 송대 주자의 《태극도해(太極圖解)》, 모기령(毛寄齡)의 《태극도설유의(太極圖說遺議)》 등이 있다. 〈李聖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