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唐)나라 시대의 선승(禪僧)이며, 선종(禪宗) 제6조이자 남종선(南宗禪)의 시조. 육조대사 또는 조계(曹溪)대사라고도 한다. 중국 광동성(廣東省) 신주(新州)에서 출생. 혜능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땔나무를 해 팔아 어머니를 봉양하던 가운데 어느 날 장터에서 한 스님이 《금강경》 가운데에서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대목을 읽는 소리를 듣고 홀연히 마음속에 어떤 깨달음이 있어 출가 수행할 뜻을 품었다.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황매산(黃梅山)으로 5조 홍인(弘忍)대사를 찾아가 법을 전해 받고 선종의 제6조가 되었다.
법을 전해 받게 된 계기가 있는데 거기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홍인대사는 수상좌인 신수(神秀)가 지은 “몸은 이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명경대와 같은지라, 때때로 부지런히 떨고 닦아서, 티끌을 일으키지 말라(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는 게송을 보고 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혜능이 지은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도 또한 대가 아니다. 본래에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서 티끌을 일으키리요(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는 게송을 보고는 인가했다. 그리하여 홍인의 인가를 받아 종통을 잇고 발우와 장삼을 전수받았다.
법을 전해 받기는 했으나 신수를 따르던 무리들의 행패로 아직 법을 펼 때가 아님을 알고 야반삼경에 황매산을 빠져나와 남방으로 가서 18년간 사냥꾼 속에 숨어 살다가 마침내 신수의 북점종풍(北漸宗風)에 대해서 남돈선풍(南頓禪風)을 떨쳤다. 당시의 선종은 신수의 북종(北宗)과 혜능의 남종(南宗)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북종은 차츰 쇠퇴해지고 남종은 크게 번창했다. 혜능은 석가모니불로부터는 33조요, 달마로부터는 6조이나, 그 이후로는 따로 의발(衣鉢)을 전수하지 않았다. 그러나 혜능의 선풍은 중국ㆍ한국ㆍ일본 등지에서 크게 발전했다. 혜능의 법문을 수록한 《육조단경》은 선종에서 매우 중요시하는 경전의 하나이다. 〈金道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