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대사전„

원불교 용어사전

황이천
[黃二天, 1910~1990]

본명 가봉(假鳳). 일제강점기에 원불교를 전담하여 수사하던 순사. 1910년 1월 20일 전북 완주군 조촌면 구증리에서 부친 준서와 모친 강상품행의 아들로 출생. 소태산대종사의 인품과 가르침에 감복, 제자가 되어 교중일을 도왔다. 황이천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세에 결혼, 장래가 막연하자 주위의 권고로 20세(1931년)되던 봄에 순사 시험에 합격했다. 1931년 5월 1일 경찰 교습소에 입소 훈련을 받고 10월 1일에 이리경찰서에 부임했다. 이후 이리 역전파출소, 황등주재소를 전전 1936년 10월 익산총부 구내에 신설된 북일주재소에 파견, 민족종교 박멸의 구실을 찾기 위해 이후 5년간 불법연구회 사찰을 전담했다.

황 순사는 불법연구회 구내에 주재한 지 1개월만에 식비 청구서를 받고 부정 단체는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황 순사는 선객을 감시하기 위해 동하선을 같이 나고 사상 검토를 하기 위해 《육대요령》 등 교과서를 정독하고 사은에 대한 강의를 듣고는 참으로 그동안 배웠던 것은 헛것이었고 미련하게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태산은 황가봉 순사에게 일정하에서 거짓되게 처세하는 그에게 새 하늘에 바르게 살라는 뜻의 이천(二天)이라는 법명을 주었다. 소태산은 ‘내가 이천이를 가르쳐 놔야 내가 편하게 생겼어’라며 직접 《대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후로 황 순사는 소태산이 준 법복 차림으로 선방과 대각전에서 대중을 감시하며 먼저 조실에 보고하고 난 뒤에 이리경찰서에 보고했다. 4년 남짓 불법연구회를 사찰하면서 황 순사는 부지불식간에 공부가 상당히 익어갔다. 공명정대 검소근면하고 절도 있는 대중생활에 감화를 받은데다가 소태산의 법설을 듣고 나면 자신이 세상 이치를 다 깬 듯한 심정이어서, 예회 날에 자청해서 대각전에서 강연한 일이 있었다. 총부를 방문했던 지방 회원이 이 강연을 듣고 매우 감동하여 광주 집으로 돌아가서 ‘불법연구회를 사찰하던 형사가 종사주 법화(法化)에 도통했다’고 소문을 내었다. 이 일이 있은 뒤로 황 순사는 이듬해(1940) 4월 황화면(현 여산면) 주재소로 전임되었다.

3개월 뒤 이리경찰서 고등형사로 부임하여 불법연구회에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광복이 되고 ‘전북신문’에 대서특필로 ‘불법연구회 괴롭힌 악질 고등형사 황가봉 체포’라는 제하의 기사가 났다. 반민특위에서 실지 조사를 나섰고 불법연구회는 이에 대해 그의 무죄함을 증명했다. 황이천은 1947년(원기32) 6월 1일 소태산 열반기념일에 정식으로 입교 수속을 밟았고, 뒷날 자녀 명신이 전무출신했다. 그는 만년에 원불교 교도로서 돈독한 신행생활을 하고 총부와 각지 교당을 순회하며 ‘대종사 추모담’을 발표했고 《원불교신보》에 〈일정하 사찰 형사의 회고-내가 내사한 불법연구회〉란 제목으로 수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1990년(원기75) 4월 1일 81세를 일기로 열반했다. 〈朴龍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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