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대사전„

원불교 용어사전

희사위
[喜捨位]

개요 의의

개요

법강항마위 이상된 분의 부모에게 드리는 존위(尊位). 원불교에서는 법강항마위된 분의 부모에게 소희사위(小喜捨位), 출가위된 분의 부모에게 중희사위(中喜捨位)의 대각여래위된 분의 부모에게 대희사위(大喜捨位)의 존위를 드린다. 특히 대희사위는 ‘법훈’으로 모신다. 소중한 자녀를 희사심으로 이 공도(公道)에 내놓아 일하게 한 데 대한 교단적 예우이다.

의의

소태산대종사는 희사위 기념식에서 “우리 회상의 창립에 귀중한 자녀를 생육 희사한 부모들의 공덕을 존숭하기 위해 그분들에게 희사위의 존호를 올리고 기념하나니, 과거나 현재의 세속 인심은 대개가 이기심에 충만하여 정신ㆍ육신ㆍ물질의 삼 방면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은 적으며, 자녀를 둔 사람으로서도 우선 자기 일신을 의뢰할 생각만 주로 하여 설혹 훌륭한 자질(資質)이 있는 자녀라도 애석하게 일생을 한 가정에 매어 있게 한 일이 허다했는데, 희사위 여러분은 일찍부터 이러한 생각에서 초월하여 자기의 영화와 안일을 불고하고, 그 귀중한 자녀들을 이 큰 세계 사업에 희사했나니, 이는 자비한 보살행의 일단이라, 우리는 이 희사위 여러분의 정신과 공덕을 영원히 추모하며 그 뜻을 받들어 어느 세상을 가든지 항상 공중을 위하는 참된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이니라”(《대종경》 인도품48)라고 했다.

현재 원불교에서는 소태산의 부모인 박성삼(朴成三)ㆍ유정천(劉定天), 정산종사와 송도성의 부모인 송벽조(宋碧照)ㆍ이운외(李雲外), 대산종사의 부모인 김인오(金仁悟)ㆍ안경신(安敬信), 박장식의 부모인 박해창(朴海昌)ㆍ정형섭(鄭亨燮) 등 여덟 분의 대희사위를 비롯하여 여러분의 중희사위, 소희사위를 존숭하고 있다. 전통불교에서는 희사(喜捨)를 기쁘게(喜) 재물을 베풀어 내놓는 것(施捨), 깨끗하게 내놓는 것(淨捨), 깨끗하게 베푸는 것(淨施)이라 일컬으며 주로 삼보공양(三寶供養)을 위해 금전이나 물품을 승(僧)에게 베푸는 것을 일컫는다.

또한 희사란 말의 어원은 자ㆍ비ㆍ희ㆍ사의 사무량심(四無量心)에서 희무량심(喜無量心, mudit-aprama-citta)과 사무량심(捨無量心, upek-aprama-citta)을 합성함에 있다. 희무량심은 희수(喜受)를 체(體)로 하여 다른 이에게 즐거움이 있는 것을 시샘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가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어 희열케 하려는 마음으로 처음은 친한 이로부터 시작하여 점점 다른 이에게 미치게 하는 것이다.

사무량심은 무탐(無貪)을 체로 하여 중생을 평등하게 보아 원ㆍ친(怨ㆍ親)의 구별은 두지 않고 자ㆍ비ㆍ희(慈ㆍ悲ㆍ喜)의 마음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마음으로 베풀라는 것으로 처음은 관계없는 사람에게 일으키고 점차로 친한 사람과 미운 사람에게까지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대승본생심지관경(大乘本生心地觀經)》 제4에는 “대자비심을 일으켜서 외로운 이에게 베품에 땅강아지와 개미조차 해(害)를 가하지 못하며 인욕(忍辱)으로 옷을 삼고 자비(慈悲)로 집을 삼아 덕 있는 이를 존경하고 마음이 교만함이 없이 일체를 마치 갓난아이처럼 연민하며 재리(財利)를 탐(貪)하지 않고 항상 희사(喜捨)를 닦아서 삼보에 공양하되 만족하지 않으며 법을 위해 몸을 버리되 아까워함이 없음이 이와 같으면 백의(白衣)로 비록 출가하지 않아도 이내 무량무변(無量無邊)의 공덕을 갖추어서 내세에 만행(萬行)이 원만하고 삼계를 초월하여 대보리를 증득할지니 닦은 바 마음이 곧 참다운 사문(沙門)이요 참다운 바라문이다. 이는 참다운 비구요 참다운 출가이니 이와 같은 사람을 곧 집에 있으나 집을 벗어난 사람이라 이름한다”(《대정신수대장경》 제3)라고 했다. 〈金聖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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