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대사전„

원불교 용어사전

무시선법
[無時禪法]

개요 무시선의 특징 원리 방법 자유자재 하는 선

개요

원불교에서 표방하는 선수행의 핵심적인 내용. 간단(間斷)없는 선공부(禪工夫). 언제나 삼학병진(三學立進)하는 공부라는 의미로 《정전》 ‘표어’에 ‘무시선 무처선(無時禪無處禪)’이라고 표방했다. 이를 줄여서 무시선법이라고 한다. 그 의미는 삼학(三學) 수생의 요령을 얻으면 어느 때나 선을 할 수 있고 어느 경계나 선을 할 수 있는 공부길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삼학수행의 익숙한 공부법으로서 그 요령은 한마음 비워 천만경계(千萬境界)에 물들지 않고 자유(自由)하는 것이니 무시선을 계속하면 안에 있는 마음이 밖으로 흩어지지 아니하고(內不放出) 밖에 있는 경계가 이 마음을 달랠 수 없는(外不放入) 상태가 되어 능히 동정(動靜)없는 큰 공부를 할 수 있는 법을 말한다.

무시선의 특징

선의 깊은 단계에 이르자면 어느 누구에게나 자연히 무시선과 같은 공부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불교에서는 공부하는 기초단계에서부터 국한(局限)을 트게 하는 이 선공부를 법으로 가르쳐 더욱 쉽게 공부길을 잡도록 한다. 이상의 특징을 조목을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삼학(三學:精神修養ㆍ事理硏究ㆍ作業取拾)의 원리를 찾아 원만히 병진할 수 있는 공부법.
② 경계(境界)의 유무에 걸림 없고 육근(六根)의 동정(動靜)에 한결같이 간단없이 행하는 선법.
③ 그 일 그 일에 공부심을 놓지 아니하여 바른 처사를 하도록 하는 공부법이니 결국 일할 때 중정(中正)을 놓지 않는 선법.
④ 사회정의(社會正義)를 실현하되 공부심으로 행할 수 있으므로 일 잘하는 역량(力量)이 샘솟는 길이 된다.
⑤ 좌선은 망념(妄念)을 놓는 데에 중점을 두는 것이라면 무시선은 어느 경계에 사로잡힘이 없는 온전한 마음으로 된 생각의 자유를 얻는 데에 주력하는 공부길이다.
⑥ 어느 곳에서나 걸리고 막히지 아니하되 공경심(恭敬心)을 놓지 아니하고 행하므로 무시선공부가 곧 불공(事事佛供)하는 공부도 된다.

원리

무시선의 원리는 각자의 마음 본래를 깨쳐 마음의 자유를 얻는 데에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전》 ‘무시선법’ 첫 구에 “대범 선(禪)이라 함은 원래에 분별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을 오득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정전》 무시선법)라 했다. 선의 원리는 ‘분별주착’이 없는 본연의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곧 선의 원리를 요득(了得)했다고 볼 수 있다. 마음 본래에 물들고 섞이며 하굴(下屈)하고 높아지며 구겨지고 때 묻지 않은 본연의 마음자리를 깨닫게 되면 능히 어느 경계를 당하나 자유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대로 많은 불조사(佛祖師)가 이 이치를 깨닫는 데 그 바탕이 되어 왔다.

원효(元曉)는 해골 물에 호오(好惡)가 없는 이치를 보았고, 도신(道信)은 우리가 본래 묶이지 아니하고 사는 해탈(解脫)한 몸임을 보았으며, 또한 어느 스님은 정육(精肉)에 추하고 정한 것이 없다는 소리에 크게 깨달았다. 이같이 주착심 없는 마음을 알게 되면 자연히 모든 망념(妄念)이 쉬게 되고 모든 업장(業障)이 녹으며, 따라서 선악의 모든 인연이 조촐하여 진다. 이에 따라 자연히 마음의 자유를 얻게 된다. 마음에 주착심(住着心)이 없고 걸린 바가 없는 초연한 가운데 넉넉한 마음 상태는 능히 만유(萬有)를 살려낼 수 있는 자유의 힘이 생긴다. 이처럼 산 마음의 상태를 찾아 자유할 수 있는 원리가 곧 무시선의 원리가 된다.

방법

《정전》에서 무시선의 방법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공(眞空)으로 체를 삼고 묘유(妙有)로 용을 삼아 밖으로 천만경계를 대하되 부동(不動)함은 태산(泰山)과 같이하고 청정함은 허공과 같이 하여 동하여도 동하는 바가 없고 정하여도 정하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작용하라”(《정전》 무시선법)했다. 진공이란 욕심세계에 처해도 욕심이 없고 사념 망상에 있어도 능히 그 망상에 벗어나는 상태이니 항상 티끌세상에 살고 있으나 추호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무념(無念)의 상태요, 묘유란 한 생각 발할 때 걸리고 막힘이 없이 추호도 거리낌이 없는 무애자재(無礙自在)하는 마음상태이니 이것이 곧 참마음 작용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진공의 이치를 알아 천만경계에 부동하는 공부가 필요한 바 진공의 원리를 알게 되면 비록 어렵고 괴로운 상황에 있으나 진공으로 마음을 비추어 사는 고로 천만경계에 부동할 수 있는 원천적인 힘이 된다. 그러나 비록 원리만 깨달았다고 즉시 실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항상 심력을 써서 부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성(心性)으로만 수양하는 것이 아니요, 기질(氣質)상으로도 수양해야만 한다고 가르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묘유의 마음으로 어느 곳에서나 거리낌 없이 작업하는 상태를 일러 ‘청정하기를 마치 허공과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흔히 경계 따라 마음이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경계 앞에 능히 자유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승(二乘 : 성문, 연각)의 선은 경계 따라 일어난 마음과 경계를 제거하는데 온갖 힘을 다 쓰나 보살(菩薩)의 선은 한 생각 나올 때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며 추호도 걸리고 막히지 아니하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혜심어록(慧諶語錄)》)고 한 것이 곧 이 무시선의 원리와 방법에 상통하는 것이라 하겠다. 진공의 공부는 한 생각들일 때 추호도 걸리고 막힘이 없이 순연한 본연의 마음을 떠나지 아니함을 이름이요, 묘유의 공부는 한 생각 낼 때 오롯이 나와서 추호도 물들지 아니하고 조촐한 상태를 이름이다.

그러므로 진공묘유는 한 생각 내고 들이는 공부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곧 진공은 백천번뇌(百千煩惱)를 녹여 삼키는 능력이요, 묘유는 환화(幻化)의 모든 선악이 자성을 떠나지 아니했음을 알아 그 자리에서 온전히 실행하는 길이라고 하겠다. 이 들이쉬고 내쉬는 길을 찾아 인도정의(人道正義)에 맞게 마음을 쓰도록 하면 그것이 무시선의 방법이라 하겠다.

자유자재 하는 선

무시선을 계속하면 어느 경계에나 능히 자유할 수 있어서 마침내 생사에도 두려울 바가 없어 무한의 동력(動力)을 얻게 되는 것이므로 동정(動靜)없는 가운데 능히 자유자재하는 생동하는 생활을 뜻한다. 그러므로 경계따라 움직이는 마음을 놓고 마음 스스로 움직이는 자유의 능력이 무시선의 힘이 되는 것이다. 이 자유의 선이 되도록까지 소태산대종사는 육근(六根)이 동할 때와 정할 때에 서로 준비가 되고 서로 바탕이 되는 작업으로써 동정간(動靜間) 불리선(不離禪)으로 요약하고 있다. “육근이 무사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一心)을 양성하며 육근이 유사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정전》 무시선법)고 한 그 요지가 다름이 아닌 동정간 서로 힘이 될 수 있는 삼대력이다.〈金道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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