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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조합실
[防堰組合室]

전남 영광 길룡리 방언조합의 회실. 구간도실이라고도 불렀다. 소태산대종사 대각 후 신도들의 집회장소가 일정치 못하여 처음에는 돛드레미에 있는 이씨 제각을 빌려 썼고, 간척사업을 시작하면서 강변주막을 ‘방언관리소’로 사용했다. 강변주막이 너무 협소하여 조합실 건축이 절실히 요구되어 왔다. 방언조합은 1918년 11월에 옥녀봉 아래 터를 정하고 조합실 건축에 착수했다. 소태산대종사는 조합실의 상량에 한시 네 귀를 썼다.

사원기일월 직춘추법려 송수만목여춘립 계합천봉세우명(梭圓機日月 織春秋法呂 松收萬木餘春立 溪合千峯細雨鳴:두렷한 기틀을 해와 달이 북질해서 봄가을의 법을 짜며 솔은 일만 나무의 남은 봄을 거두어 서 있고 개울물은 일천 봉우리의 가랑비를 합하여 소리치며 흐른다) 1919년(원기4) 1월에 준공한 5간 겹집 조합실을 통칭 ‘구간도실’이라고 하나, 별로 크지도 않은 초가집에 방을 아홉 간씩이나 들여놓아 장정 하나 빠듯이 겨우 드러누울 정도의 작은 방으로 밀 창을 터면 한 방이 되었다.

그래서 아홉 단원들의 모임방이라서 회집실(會集室) 또는 ‘회실(會室)’이라 했고 소태산이 공부를 가르쳐 주는 곳이라서 ‘교실’이라고도 했다. 또 도 공부를 하고 기도하는 집이라 하여 ‘도실’이라고도 했다. 소태산은 이 조합실 기둥에 ‘대명국영성소 좌우통달 만물건판양생소(大明局靈性巢左右通達萬物建判養生所)’라는 글귀를 써 붙여 이 집의 옥호(屋號)로 삼았다. 17자의 길다란 이 옥호에는 소태산이 앞으로 어떻게 제자들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장래 회상 건설의 포부와 방향을 찾아볼 수 있다.

‘크고 밝은 영성의 보금자리에서 모든 주의와 사상을 막힘없이 통하게 하며 천지만물을 새롭게 살려내는 곳’, 이것이 최초로 건축한 회실의 중대한 의미가 있다. 조합실은 단지 조합원들의 모임방으로서의 회실로만 그치지 않고 상량문과 옥호에서 뜻하듯이 회상 창립을 위한 인재양성의 교실 또는 도실(道室)로서의 구실이 더 컸다. 방언조합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晝作夜禪) 교실로서, 열흘마다 모여 계문 대조하고 단장의 법설을 듣는 예회실로서(三旬例會), 그리고 단원 기도실로서의 활용이 많았다.

방조제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을 무렵 전국에 만세운동이 요원의 불꽃처럼 번질 때 소태산이 말했다. “개벽을 재촉하는 상두소리니, 바쁘다 어서 방언 마치고 기도드리자”(《정산종사법어》 국운편3). 방조제 공사가 끝나자마자 구인 단원들은 조합실을 본부로 하고 노루목 뒷산(중앙봉)을 축으로 옥녀봉을 제1 방위(乾方:서북쪽)로 시작하여 각자의 방위를 따라 산상에 올라가 시방세계 인천(人天)을 책임질 천력(天力)을 기원하는 간곡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방언조합실은 1923년(원기8) 8월 소태산의 모친상을 계기로 각지의 회원들이 모여들자 장소가 습하고 협소하여 돛드레미 기슭 현재의 영산출장소인 영산원으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朴龍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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