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역사 및 의의 삼신불의 의미 원불교의 삼신불수용
개요
대승불교에서 불신을 성질상 셋으로 나눈 법신불(法身佛)ㆍ보신불(報身佛)ㆍ화신불(化身佛)을 말한다. 법신불은 영겁토록 변치 아니하는 만유의 본체인 이불(理佛), 보신불은 인(因)에 따라 나타난 불신으로서 수행정진을 통해 얻어진 영원한 불성, 화신불은 일체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불신으로 화현한 역사적 부처이다. 불교의 교리발달사 내지 신앙발달사 상에는 불타의 본질과 현상 및 그 양면의 상호관계에 대한 철학적 탐구로서 2신설, 3신설, 4신설, 5신설, 10신설 등 다양한 불신론(佛身論)이 제기되어 왔다. 그 가운데 가장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 삼신설로서, 원불교도 이 삼신설을 그대로 받아들여 활용하고 있다.
역사 및 의의
불타의 영원한 본질에 관한 탐구로서의 불신론이 제기된 것은 일찍이 석존 당시로까지 소급해 올라간다. 《증일아함》 권44에 의하면 “나 석가모니불은 수명이 무량하다. 왜냐하면 육신은 비록 소멸되어도 법신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불타의 실신(實身)은 80세 입멸의 육신이 아닌 영원불멸한 본질로서의 법신이라 한다. 이러한 원시불교의 소박한 2신설은 부파불교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바, 대체로 상좌부계에서는 역사적 존재로서의 현실 불타에 초점을 두었다면, 대중부계에서는 초역사적 존재로서의 이상적 불타에 역점을 두었다고 본다.
대승초기에 이르러서는 유한하고 무상한 색신보다는 영원불멸한 진리, 곧 법신을 중심으로 하는 본격적 2신설로 발전한다. 특히 대승초기의 《반야경》 계통에서는 불타여래의 참모습은 유형의 색신으로서가 아닌 반야의 지혜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진여법신임을 강조한다. 한편 정토계경전이나 《법화경》에서는 그 본의가 구체적 타토불(他土佛)로서의 아미타불 내지 제불의 통일체로서의 구원석가불(久遠釋迦佛)에 역점을 두고 있는 만큼, 불타의 본질론으로서의 불신설은 그다지 강조되지 않은 듯하다.
이와는 달리 《화엄경》에 나타난 시방편만의 비로자나불은 영원 무한한 보편적 진리 그 자체를 일대법신(一大法身)으로서, 이 우주의 모든 존재는 비로자나불의 현현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2신설은 용수(Nāgārjuna)에 의해 더욱 심화 발전되는 바,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의 법신에 대한 설명가운데 이미 보신불적 성격이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어 후대 3신사상의 기초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처럼 불타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탐구를 통해 불타의 보편적 영원상으로서의 법신과 구체적 현실상으로서의 색신이라는 법ㆍ생 2신설이 확립됨에 따라, 불신론상에는 자연 이들 양자간의 관계 내지 조화 회통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법신의 영원성과 색신의 구체성의 양면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제3신, 곧 보신(Saṃbhoga-kāya)이 고려되고, 이에 의해 법ㆍ보ㆍ화 삼신설이 성립하게 된다. 대승중기 무렵 유가행유식학파 또는 여래장계의 사상가들에 의해 보살사상과 전의(轉依)사상 등을 기반으로 하여 삼신불론이 확립된다. 특히 현상제법의 분석과 그 본질의 규명에 주력한 유식학파에서는 불타관에 있어서도 불타의 구체적 현실신(現實身)으로서의 색신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물론, 그 불타의 본질로서의 영원한 법신에 대한 규명에 초점을 기울인다.
그 결과 종래의 2신외에 구체적이면서도 영원한 불과보신(Saṃbhoga-kāya)을 안출해내고 이에 의하여 삼신설을 확립하게 된다. 이러한 제유형의 불타관 내지 불신설의 발달은 단순히 한두 가지의 요인만으로 변천된 것이 아니라, 각각 그에 상응하는 역사적ㆍ사회적ㆍ문화적ㆍ심리적 배경의 차이에 따라 변화 발전해온 거대한 불교사상사 전반의 흐름에서 파악해야 할 뿐만 아니라, 특히 인도사상의 주류를 형성해온 힌두적 사유와의 관계라는 외연적 요소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더욱이 삼신불설은 브라만ㆍ비슈누ㆍ쉬바의 삼신(三神)사상과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바, 그 가운데 보신의 개념은 힌두교의 유신론적 민중신앙운동, 특히 기원전 2세기에 유행된 《바가바드기따》 등에 출현하는 비슈누신에 대한 박티(bhakti) 신앙의 자극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삼신불설은 어느 면에서는 기독교의 삼위일체설과도 내용적으로 상통하는 점이 있는 바, 이는 힌두ㆍ불교ㆍ기독교 등 인도와 중근동지역의 제종교 사이에 상호 사상적 교류와 영향관계가 있었음을 짐작케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불교의 무아사상과 연기사상의 전개가 브라만ㆍ힌두의 실체적 사유를 타파하는데에서 출발한 것이기는 하나, 인도 민중들의 종교적 정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신앙의 대상에 대한 실체성의 측면을 전면 배제할 수는 없었을 것이며, 그러한 면을 삼신불사상이 상당부분 수용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삼신불사상은 그 출발부터 내면에 형이상학적 실체론에 대한 논란의 여지를 어느 정도 배태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교학적으로 어떻게 정리하든 간에, 생신 석가불로부터 확장된 개념인 삼신불사상이 불교도들에게는 신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삼신불사상은 인류가 창안해낸 존재의 본질에 대한 종교적 사유 가운데 매우 정치한 것 중의 하나이며, 철학성과 종교성을 동시에 만족시켜줄 수 있는 대단히 이상적인 형태라 하겠다. 오늘날 불교신앙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할 때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구도에서 접근해야할 것이지만, 하층의 기복신앙으로부터 최상층의 형이상학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기제로서의 삼신불사상은 매우 유용한 것이다.
삼신불의 의미
① 법신불: 유가행유식학파에서는 자성신(自性身)과 변화신(變化身), 그리고 제3신으로서의 수용신(受用身) 등 삼신불설을 주장한다. 먼저 자성신(Svābhāvika-kāya) 곧 법신은 여래의 참되고 청정한 법계, 또는 진여 자체를 말한다. 자성신이라 부르는 이유는 진여인 불변의 법 그 자체가 불타의 본성, 곧 자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성신은 일체의 형상도 없고 빛깔도 없으며 맑고 고요하여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차원을 떠나 있다. 이를 불교일반에서는 법신불이라고도 하는 바, 그것은 불타가 깨달은 진리, 곧 만유의 본체로서의 영원불변한 법(法, dharma) 그 자체에 인격적 의미를 부여하여 불신으로 설정한 것이다.
물론 이처럼 편만하고 평등한 이(理)는 범부ㆍ중생에게도 다 갖추어 있지만, 아직 번뇌에 덮여 그 본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를 여래장(如來藏)이라 하며, 불타에 있어서는 여실히 현현하고 있기 때문에 법신이며 자성신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자성신이라 하는 것은 진여법성 그 자체가 불타의 본성 또는 소질이라는 의미로서, 이는 불타의 깨달음에 의하여 드러나는 절대의 세계를 말한다. 더 나아가 그것은 불타의 출세 불출세와도 관계없이 여여불변한 진여자성으로서, 전 세계에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며 부동한 지(智)이며 절대영원한 불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법계를 자성으로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수용신과 변화신 등의 근거가 되고 바탕이 되는 것이다. 무착(無着, Asaṅga)의 《장엄경론》에서는 자성신에 대해 ‘전의(轉依)를 특질로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여기서 전의란 미혹에서 깨달음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식의 이론으로 설명한다면 허망분별의 의타기성(依他起性)이 단절되어 본래적인 진실한 원성실성(圓成實性)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타기성자체의 전환, 곧 ‘깨달음’이 자성신의 특질이라 한다.
이러한 자성신에 있어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이를 이법신(理法身)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지법신(智法身)까지 포함하여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유식사상계에서는 이 자성신을 이지불이(理智不二)의 법신으로 보고 있음이 통례이다. 이러한 자성신은 제불여래의 근본법신으로 일체법의 소의가 될 뿐 아니라, 여타의 2신 또한 이에 의지한다고 한다. 이처럼 자성법신은 다름 아닌 만유의 본래 자성인 진여의 이(理) 그 자체로서, 모든 유정에 본구되어 있는 보편적인 근본불신을 말한다.
② 보신불: 보신 곧 수용신은 자성신에 바탕하고 있으면서도 그 자성신 자체가 흘러나와서 활동하는 불신을 말한다. 수용신은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수용신의 이중적인 성격은 그 이름의 분류를 초래했다. 《성유식론》에서는 수용신의 이러한 양면적 성격을 종합 회통시켜, 자리(自利)ㆍ지혜의 향상무적 입장에서 본 자수용신과 이타(利他)ㆍ자비의 향하문적 입장에서 본 타수용신의 양면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자수용신(自受用身)은 불타의 오랜 서원과 실천수행에 의해 주어진 결과(酬報)로서의 불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를 보불(報佛) 또는 보신불이라고 부른다. 이에 비해 타수용신(他受用身)은 초지(初地) 이상의 보살을 화익(化益)하기 위해 평등성지에서 수의응현(隨宜應現)한 미묘한 정신(淨身)을 말한다. 그러나 보신은 두 측면 모두를 갖추어 응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응신(應身)이라고도 표현한다. 한편 《성유식론》에서는 이들 2종 수용신을 각각 대원경지와 평등성지에 관련시켜 설명하기도 하고, 자수용신은 자리에, 타수용신은 이타에 배대하여 구분설명하기도 한다. 이상의 설명을 종합하여 볼 때 자수용신과 타수용신은 결국 동일한 법신불을 지혜와 자비, 자리와 이타, 향상문과 향하문의 양면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으로서, 이들은 결국 서로 떠날 수 없는 상보적 관계 또는 불이의 관계라 할 수 있다.
한편 자수용이란 여래가 삼아승기겁을 수행한 결과 얻은 진실공덕을 말한다. 이 불타는 완전원만하고 청정상주하며 전 우주에 편만한 색신의 불타이다. 그리하여 영원토록 광대한 법락을 수용하고 있다. 이는 정각을 이룬 불타가 해탈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는 모습이며, 그 마음에는 전 세계가 비치고 있다. 대원경지가 이 자수용신의 정토로서 자수용토를 나타낸다고 한다. 타수용신은 불타가 평등성지를 정토로 삼아 나투어 낸 미묘하고 맑은 공덕의 몸(微妙淨功德身)이라 한다. 따라서 이는 자신과 남을 평등하게 보는 대자비심의 발로이다.
이 불타는 순정토(純淨土)인 타수용토에 거주하면서 10지의 보살중(菩薩衆)을 위해 대신통을 발휘하고 정법륜을 굴린다고 한다. 그런데 수용신은 자수용신이든 타수용신이든 자성신, 곧 법신에 바탕하여 있는 불신이다. 법신은 적연 부동하고 일체의 상을 떠나 있으므로 언어와 명상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불신이다. 따라서 무어라고 표현해도 이미 그르다. 그래서 중생을 위해 언어와 명상의 차원으로 나타날 때 중생에 수용되어지는 측면의 모습을 수용신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해를 위한 편의상 자성신은 체(體)요, 수용신은 용(用)이라고 표현하고, 체와 용은 둘이 아니건만 나타날 때는 용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법신불의 용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대내적으로 지혜의 광명이며 해탈의 즐거움의 면이며, 대외적으로는 보살들을 위해 신통을 발휘하고 법륜을 굴리는 면이다. 그러나 이들 지혜와 자비는 본래 둘이 아닌 동일 법신의 양면을 나타낸 것으로서, 한 면으로 보면 해탈의 즐거움이요, 다른 면으로 보면 대자비가 발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수용신은 타수용신을 떠날 수 없고, 타수용신은 자수용신을 떠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한편 수용신을 ‘보신(報身)’이라고도 하는 것은 ‘인(因)인 원(願)에 대한 대가로서 그 과(果)를 향수(享受)한다’는 의미 때문이다.
따라서 수용신의 세계는 대서원의 인에 따라 성도하는 과불(果佛)의 모습으로 의인화되는 것이다. 수용신의 대표적 존재인 법장(法藏)비구의 발원이 수행을 통하여 아미타불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한 구도자의 억겁에 걸친 파란만장한 구도역정을 말한 것인데, 이것은 법신이 구상화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침내 성도한 보신의 불타는 원만하고 청정하며 전 우주에 가득한 색신의 불타 그 자체이다. 이 우주적 불타는 수행의 인을 통해 정각의 과보를 이룬 해탈의 즐거움을 수용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이를 자수용이며 향상문적 성격의 불신이라 규정할 수 있다.
수용신은 이처럼 한편으로는 자수용이라는 향상문적 불신의 성격을 지닐 뿐만 아니라, 동시에 타수용이라 하는 향하문적 성격을 지닌 불신으로도 표현된다. 곧 자신과 남을 평등하게 보는 평등성지에 바탕하여 보살들을 위해 신통을 발휘하고 법륜을 굴리는 자비의 측면을 말한다. 자성신에 비한다면 수용신은 보다 구상적이며 동적인 불신으로서, 그것은 변화신과 자성신의 사이에 존재하며 그 양자를 조화 회통시킨, 다시 말하면 변화신과 자성신의 구체성과 영원성, 현실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융회시킨 불신이라 할만하다.
곧 수용신은 변화신의 보편화ㆍ신격화인 동시에 자성신의 구상화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수용신의 발상은 불신론의 절정을 장식하는 창발적인 사상인 동시에, 그 성격의 이중성으로 말미암아 보신의 성격을 한 말로 단정할 수 없는 다양하고 난삽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요컨대 ‘모순의 조화’라 할 수 있는 수용신은 자수용인 동시에 타수용이며, 비인격적인 동시에 인격적이며, 자리적인 동시에 이타적이며, 향상적인 동시에 향하적이며, 대원경지인 동시에 평등성지인 것이다. 그리하여 수용신은 의미적으로는 삼신설의 중심이 되는 불신이며, 이 수용신의 확립에 의하여 삼신설의 이론이 완성되는 것이다.
③ 화신불: 수용신은 10지(地)에 이른 보살들은 교화하지만 아직 그에 이르지 못한 각양각색 천차만별의 모든 중생들을 위한 자비의 화신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서 수류(隨類)의 화신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곧 10지에 이르지 못한 보살이나 이승ㆍ범부 등을 교화하기 위해 그들의 능력이나 근기의 차별에 따라 갖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을 화신이라고 한다. 이를 변화신 또는 줄여서 화신이라 부르는바, 이는 성소작지(成所作智)에 의하여 변현(變現)한 불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화신은 석존이 된다.
이는 석존이 오랜 생을 되풀이 하여 선근을 쌓아 불타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법신불 그 자체가 이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그들의 근기에 맞춰 이 세계에 화현하신 부처가 바로 석존이라고 하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석존은 생(生)한 불타가 아니라 화(化)한 불타인 것이다. 석존은 일면으로는 마야부인의 태를 통하여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서의 번뇌를 가지고 살다가 깨달음을 얻고 이윽고 입멸한 역사적 인간이다. 다른 면으로 보면 그는 보편의 법신불이 중생제도를 위해 예토(穢土)에 인간의 육체를 지닌 존재로 화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변화신은 위에서 살펴본 수용신 가운데 타수용신의 성격에 가까운 이타적 향하문의 불신으로서, 어떤 의미에서는 이를 타수용신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다. 변화신의 이러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성유식론》 권10에서는 이들 타수용신과 변화신을 모두 ‘타를 교화하기 위한 방편시현의 불신’이라 하여, 자수용신과는 달리 이타문(利他門)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신에 있어 주목되는 것은 종래의 2신설에서는 ‘색신(Rūpa-kāya)’ 또는 ‘생신’이라 하던 것을, 삼신설에서는 ‘변화신(Nirmāṇa-kāya)’이라는 말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니르마나(nirmāṇa)란 원래 바라문교에서 ‘신의 환화(māya)’라는 의미로 쓰인 말이나, 여기에서는 불타의 중생구제를 위한 적극적 활동으로서의 화현 또는 응현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색신이 변화신으로 바뀐 데에는 석존이 다생을 통해 선근을 쌓아서 불타가 되었다고 하는 종래의 입장과는 달리, 영원무한의 보편불로서의 법신불이 중생교화를 위해 그들의 근기에 상응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여 나타난 몸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생멸유전하는 연기의 세계 속에서의 중생제도를 본질로 하는 변화신에는, 시방삼세를 통해 중생의 수와 근기가 한량이 없는 만큼 거기에는 무수의 제불타가 다양하게 화현되어 나타난다는 것으로서, 역사적 존재로서의 석존이야말로 인간세계에 나타난 화신의 일례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뿐만 아니라 토끼와 원숭이 등 다양한 차별상으로 화작(nirmita)되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원불교의 삼신불수용
원불교에서는 이러한 화신불사상의 확대해석으로 “처처불상 사사불공”을 강조하여, 우주만물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를 구제하고 살리기 위한 법신불의 화현 아님이 없다고 한다. 원불교의 불신관에 있어 유의할 것은 일면으로는 이상과 같은 법ㆍ보ㆍ화의 삼신불사상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또 일면으로는 삼신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법신으로 보는 불신론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원불교에서는 삼신을 구별하여 보는 협의의 법신불관과 함께, 그들 삼신 모두를 법신 하나로 보는 광의의 법신불관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광의의 법신불관은 우주적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불이나 대일여래를 강조하는 화엄의 해ㆍ행(解行) 양경십불(兩境十佛)사상이나, 밀교의 4종법신설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정산종사는 삼신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법신불이라 함은 곧 만법의 근원인 진리불을 이름이요, 보신불과 화신불은 그 진리에서 화현한 경로를 이름인 바, 화신불 가운데에는 진리 그대로 화현한 정화신불이 있고 또는 진리 그대로 받지 못한 편화신불이 있으니, 정화신불은 곧 제불제성을 이름이요 편화신불은 곧 일체중생을 이름인 바, 비록 지금은 중생이나 불성만은 다 같이 갊아 있으므로 편화신불이라 하나니라.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청정하고 바른 때에는 곧 내가 정화신불이요 삿되고 어두울 때에는 편화신불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정산종사법어》 원리편5) 〈魯大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