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시대 사상적 배경 영육쌍전 개념의 형성 영육쌍전의 의미
개요
영적인 삶 곧 정신의 고양을 추구하는 수도의 삶과 육신의 삶 즉 건강하고 건전한 현실 삶을 함께 온전히 완성해 가는 것을 추구하는 사상. 원불교 교리 표어 중 하나로 《원불교교전》 맨 머리에 실려 있으며, 공부(工夫)와 사업(事業)을 병행하여 복(福)과 혜(慧)를 원만하게 갖추자는 이사병행의 이념과도 상통한다.
시대 사상적 배경
석가모니불은 백성의 경제생활을 도와주어야 악행이 감소된다 했고, 맹자(孟子)도 의식(衣食)이 족해야 백성들이 예절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인류역사를 통해 종교 전통에서는 현실생활의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높이는데 중점을 두었다. 근대에 이르러 이러한 전통에 대한 반성과 함께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현실 상황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종교도 변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칼빈주의가 근대 자본주의 형성의 직접적인 동력이었다고 말한다.
청렴한 생활을 지향하는 청교도정신을 통해 부지런히 일하며 저축하는 정신이 함양됨으로써 자본의 축적이 가능해졌다고 보았다. 그는 경제생활을 더욱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향상시켜 가는데 종교적 이념이 기여할 수 있다는데 주목한 것이다. 이는 중세 서양에서 종교 편향적 가치관으로 인해 현실 삶의 문제에 부정적인 결과를 낳은 것과는 대조된다. 한국에서도 조선 후기에 실학을 숭상하는 학자들은 조선의 통치이념이었던 성리학의 도덕적 엄숙주의의 전통을 비판했다.
실학자들은 현실생활을 정체시키는 법률 제도 등 사회규범들을 사실적으로 개선하고 농・공・상 등 실업과 의학 및 과학지식과 기술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으며 실증적 고증을 통해 사실 또는 객관적 지식을 확충해가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탐구방법을 추구하는 등 새로운 학풍을 일으켰다.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은 “이용(利用)이 있은 다음에 후생(厚生)이 있다. 즉 경제생활을 풍부하게 할 수 있고 경제생활을 풍부하게 한 다음에 도덕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하여 경제생활을 가볍게 알고 도덕만 강조하는 완고한 유생(儒生)들을 비판했다.
그는 경농법(耕農法)・양잠법(養蠶法)・도자기 제조술(陶滋器製造術)・야금술(冶金術) 등 청나라의 선진기술을 배워오자고 주장했다. 농부의 농사경험과 농서(農書)를 연구하여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유생들이 농업발전에 무관심함을 비판하고 영농방법의 개선, 농기구의 개량, 관개수리시설의 확장을 주장했다. 이 밖에도 많은 실학자들이 현실생활을 발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실다운 학문이 되어야 할 것을 주장했던 것은 한국역사상 새로운 각성이 시작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실학의 싹은 크게 발흥하지 못했다.
영육쌍전 개념의 형성
한국 근대의 격변하는 상황에서 소태산대종사는 미래 종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했다. 영육쌍전은 그 가운데 하나로서 《정전》 수행편의 ‘영육쌍전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과거에는 세간생활을 하고 보면 수도인이 아니라 하므로 수도인 가운데 직업 없이 놀고먹는 폐풍이 치성하여 개인・가정・사회・국가에 해독이 많이 미쳐 왔다. 이제부터는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게 되므로 새 세상의 종교는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라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불조사(諸佛祖師)가 바로 전해주신 심인(心印)인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와 수양 연구 취사의 삼학(三學)으로써 의・식・주를 얻고 의・식・주 와 삼학으로써 그 진리를 얻어서 영육(靈肉)을 쌍전(雙全)하여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도움이 되게 하자.” 이 내용에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문명의 전환점으로 인식하고 과거 수도생활에 대한 반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방향을 찾아볼 수 있다. 전통종교의 수행전통에서는 일정한 자력적인 경제활동이 없이 수행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끌어야할 수도인들이 오히려 개인과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원인이 되었다. 이제 묵은 세상이 새 세상으로 바뀌는 전환의 시기이므로 새 세상의 종교는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소태산은 ‘산 종교’라고 명명하고 있다. 수도와 현실의 삶이 유리되지 않아서 건강한 현실 삶 속에서 수도의 결실이 맺어지고 수도를 통해 얻어진 체험과 지혜가 현실적 삶에서 실현됨으로써 모두가 도움이 되는 생활을 영위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수도와 생활을 아울러 온전하게 하는 삶을 성취하는 것이다.
인간생활에서 정신생활과 육신생활은 서로 떠날 수 없는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신을 존중하는 종교인들은 물질생활의 향상을 소홀히 생각하거나 나아가 이것이 수도에 장애가 된다고 보기도 했다. 정신의 숭고성만을 강조하고 물질생활에 대한 이해와 개발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빈곤과 질병으로 인해 발전이 정체되는 뒤떨어진 사회가 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우나 정신이 건전하지 못하면 인간성이 파괴되어 온전한 삶이 되기 어렵다. 영육쌍전은 영에 치우친 전통적 종교의 편향적 경향, 또는 육에 치우친 세속주의적 삶을 떠나 영과 육이 건강하게 상보적인 온전한 삶을 지향한다.
영육쌍전의 의미
영육쌍전의 개념은 대체로 세 가지의 함의를 지닌다.
① 수행상에서의 정신과 육신의 조화로운 완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 수행법인 좌선의 방법으로 소태산은 단전주선법을 제시했다. “좌선이라 함은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眞性)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에 있어 화기를 내리게 하고 수기를 오르게 하는 방법이니, 망념이 쉰즉 수기가 오르고 수기가 오른즉 망념이 쉬어서 몸과 마음이 한결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리라”(《정전》 좌선법). 단전주선법은 마음에서 참된 본성을 찾고 몸에서 수승화강으로 기운을 조화롭게 하는 선법이다. 단전주는 선 자체를 위해서 뿐 아니라 위생상으로도 극히 긴요한 법이다.
“마음을 단전에 주하고 옥지(玉池)에서 나는 물을 많이 삼켜 내리면 수화가 잘 조화되어 몸에 병고가 감소되고 얼굴이 윤활해지며 원기가 충실해지고 심단(心丹)이 되어 능히 수명을 안보하나니, 이 법은 선정(禪定)상으로나 위생상으로나 실로 일거양득하는 법”이라고 한다. 이 선법을 오래 수행하면 “필경 물아(物我)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오직 원적무별한 진경에 그쳐서 다시없는 심락(心樂)을 누리게 되리라”고 한다. 마음에서 참된 본성을 회복하며 몸의 기운이 조화로워 원기가 충실해지고 심단이 되어 원적무별한 진경에서 심락을 누림을 지향하는 수행이다.
소태산은 불교에 연원을 두고 있으나 당시 한국 불교 수행의 핵심인 간화선에 대해서는 비판적 견해를 보인다. ‘화두(話頭)만 오래 계속하면 기운이 올라 병을 얻기가 쉽고 또한 화두에 근본적으로 의심이 걸리지 않는 사람은 선에 취미를 잘 얻지 못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화두수행 방법에 대한 반성과 기운의 부조화에 대한 문제를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단전주선법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몸과 마음이 조화롭게 상보적으로 작용하며 온전히 완성되는 성취를 기대했다.
동시에 몸의 건실한 유지를 중시했다. 소태산은 자신의 수행과정을 돌아보고 “나의 길 얻지 못할 때의 헛된 고행을 증거하여 몸을 상하는 폐단이 없게 하라”(《대종경》 수행품47)고 부촉한 바 있다. 육신의 건강을 지키면서 종교수행을 하는 것이 대승수행(大乘修行)임을 강조한다. 또한 몸은 수행하고 보은하는 근본이다. 제자 가운데 신(信)을 바치는 뜻으로 손을 끊은 사람을 보고 소태산은 크게 꾸짖고 ‘몸은 공부와 사업을 하는데 없지 못할 자본’이라고 강조했다. 영육쌍전은 영(靈)과 육(肉)이 조화로운 건강한 수행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② 수도생활과 현실생활의 원만한 조화이다. 소태산은 불법을 천하의 큰 도라고 하고 불교에 연원을 정했다. 그러나 당시 불법이 현실 삶에서 유리되고 있는 상황을 직시했다. 불법으로 생활하고 불법이 현실생활에서 실현되어 누구나 사람으로서 정당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책임을 회피하고 수도만 일삼는 것은 건강한 삶이 될 수 없으며 도리어 개인 가정 사회 국가에 해독을 끼치는 종교인이 될 수도 있다. 소태산은 대각 후 첫 행보로 가난하고 각성이 부족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삶의 희망을 찾고 생활의 질서를 세워가는 길을 모색했다.
이에 그들과 함께 저축조합 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는 영적인 구제와 현실생활을 병행하는 활동, 곧 영육쌍전의 새 삶 운동이었다. 이후에도 저축조합 운동에서 시작된 영육쌍전의 노력은 초기 교단사에서 간석지를 개간하고 법인기도를 올리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 후 익산총부 건설당시에도 엿 장사와 농축산과 양잠 개간사업을 일으켰고 한약업 등의 사업을 전개하며 주경야독의 전통을 이어갔다. 소태산은 현실 삶을 영위해나가는데 필요한 물질적 요소들을 의・식・주로 표현하고 정신의 의식주에 해당하는 수행과 병행할 것을 강조했다. 곧 불법으로 생활하고 생활에서 불법을 실현하여 정신적 성취와 풍요로운 생활의 영위를 조화롭게 이루고자했다.
“육신의 의・식・주가 필요하다면 육신생활을 지배하는 정신에 일심과 알음알이와 실행의 힘은 더 필요할 것이 아닌가. 정신에 이 세 가지 힘이 양성되어야 그에 따라 의・식・주가 잘 얻어질 것이요, 이것으로 그 사람의 원만한 인격도 이루어질 것이며, 각자의 마음 근본을 알고 그 마음을 마음대로 쓰게 되어야 의・식・주를 얻는 데에도 정당한 도가 실천될 것이며, 생・로・병・사를 해탈하여 영생의 길을 얻고 인과의 이치를 알아 혜복을 구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또한 참답고 영원한 의・식・주 해결의 길이라, 그러므로 정신의 삼강령이 곧 의・식・주 삼건의 근본이 된다 하노라”(《대종경》 교의품19). 영육쌍전의 이념을 주창한다고 하여 물질생활과 정신생활의 가치를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나 수도 생활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노력이 현실의 물질생활을 바르게 이끌어감으로서 현실 생활 속에서 진리가 실현될 수 있게 하자는 데에 본뜻이 있다.
③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병진이다. 정신적 고양을 추구하는 정신문명이 과학적 지식과 기술의 발전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정신문명과 과학문명이 겸전한 참 문명세계를 건설하려는 사상이 영육쌍전 정신의 확대된 의미이다. 물질문명으로 대표되는 모든 현실의 문명은 바른 정신으로 구하고 바른 정신으로 사용될 수 있을 때 그 참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 “안으로 정신문명을 촉진하며 도학을 발전시키고 밖으로 물질문명을 촉진하여 과학을 발전시켜야 영육이 쌍전하고 내외가 겸전하여 결함 없는 세상이 되리라.
그러나 만일 현대와 같이 물질문명에만 치우치고 정신문명을 등한시한다면 마치 철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칼을 들려준 것과 같아서 어느 날 어느 때에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를 것이니 이는 육신은 완전하나 정신에 병이 든 불구자와 같고 정신문명만 되고 물질문명이 없는 세상은 정신은 완전하나 육신에 병이 든 불구자와 같나니 그 하나가 충실하지 못하고 어찌 완전한 세상이라 할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내외문명이 병진되는 시대라야 비로소 결함 없는 평화 안락한 세계가 될 것 이니라”(《대종경》 교의품31)고 했다. 진리추구와 도덕 정신에 바탕하여 과학 지식과 기술을 생활에 도입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어느 한편이 충족되지 않으면 완전한 사회가 될 수 없다. 또한 도덕정신이나 종교정신에 의한 목표를 갖지 않은 과학기술은 도리어 인류의 행복에 위협이 된다. 따라서 온전한 정신문명 곧 도학이 건강한 과학문명을 이끌 수 있을 때 참 문명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영육쌍전에 포함된 내용은 세 측면에서 집약해 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수행하는 수도생활, 의식주 등의 현실생활과 종교적 수도 생활의 겸행, 물질문명을 이끄는 과학과 정신문명을 이끄는 도학의 겸전을 통해 이상적 문명사회를 이룩하는 것 등이다. 이는 개인에서부터 사회・문명에 이르기까지 그 외연이 확충되는 포괄적 이념이라 할 수 있다. 〈李聖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