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진리적 종교의 신앙 사실적 도덕의 훈련
개요
《정전》 제1 총서편 제1장 ‘개교의 동기’에 나오는 용어. 파란고해의 생령을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받아야 하는데, 정신의 세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이란 궁극적인 진리를 종지로 하는 종교를 신앙하자는 것이며,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란 사실에 입각하여 근본을 다스리는 도덕을 훈련하자는 것으로 참되고 실질적인 인격을 양성함으로서 물질문명을 선용할 정신의 자주력을 기르자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용어는 원불교 교리와 사상의 뿌리가 됨과 동시에 원불교가 지향할 바 목표가 된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
진리적 종교의 신앙은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진리적인 종교를 신앙하자는 의미와 다른 하나는 종교의 신앙을 진리적으로 하자는 의미이다. 전자는 궁극적인 진리를 최고 종지로 삼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지엽적이고 비진리적인 교의를 내세워 그릇된 신앙으로 신앙인의 전정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며, 후자는 궁극적인 진리를 표방하고서도 신앙의 방법이 비진리적인 미신신앙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적 종교의 신앙을 이해하려면 ‘진리적 종교’와 ‘진리적 신앙’이라는 두 측면으로 고찰해야 한다.
① 진리적 종교:궁극적 진리는 하나이다. 하나의 진리는 구체적인 진리들을 총섭하며, 구체적인 진리들의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궁극적인 하나의 진리는 우주와 자연세계, 인간과 일체 생명의 존재원리와 존재가치를 규정할 수 있어야 하며, 이들이 조화롭게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밝힐 수 있는 사상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진리를 신앙하는 사람들이 역리에 흐르지 않고 사실과 합리를 바탕으로 한 생활을 열어 주어야 한다. 진리적 종교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근원적인 진리를 밝힌 종교, 즉 무지한 중생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해 왔던 비본질적 가르침이 본질인 것으로 오용되지 않도록 가장 으뜸 되는 궁극적 진리를 최고 종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궁극적이라고 해서 실제로 그 진리를 응용할 수 있는 여지가 없이 지나치게 관념적으로만 전개된 진리는 종교 신앙의 목적을 달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셋째, 깨달음을 열어 주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사실성에만 충실하고 보면 일반 도덕률에 머물기 쉬우며, 그렇다고 고준한 담론으로 가득한 교설은 진리와 인간의 간격을 좁히지 못한 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절대 의존의 타력 신앙에 그치고 만다. 따라서 신앙인의 노력으로 궁극적 진리를 깨달아 진리와 합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② 진리적 신앙:성자들이 깨달음 또는 깨달음의 한 형식이라 할 수 있는 계시를 통해 궁극적 진리를 밝혀 종교를 개창하고 신앙 길을 열어 주었으나, 후세의 종교 지도자들이 교세 유지와 확장에 급급하여 성자 정신을 외면하고 신앙인을 그릇 인도하여 비진리적인 신앙이 횡행하게 되었다. 비진리적인 신앙이란 혹세무민하는 미신신앙, 진리 전체를 보지 못하고 특정한 교리에 몰입하게 되는 부분적 지엽적 신앙, 신앙을 통해 개인의 복락을 얻고자하는 기복신앙 등 여러 양태가 있다.
그런 점에서 소태산대종사는 진리적 신앙의 방향을 ‘편협한 신앙을 돌려 원만한 신앙을 만들며, 미신적 신앙을 돌려 사실적 신앙을 하게 한 것’이 곧 일원상 신앙이라고 했다(《대종경》 교의품4).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소태산이 대각을 이룬 후 천명한 일원상의 진리가 궁극적 진리이고 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종교가 진리적 종교이며, ‘일원상의 내역이 곧 사은이요, 사은의 내역이 곧 삼라만상으로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으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경외심을 가져서 청정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천만 사물에 응하여 실지불공하는 것이 ‘진리적 종교의 신앙’의 길이다.
그러나 실지불공에만 치중하다보면 궁극적 진리와의 합일을 이루기가 어렵고 결과적으로 지나친 현실주의의 신앙에 머물 수 있기 때문에 신앙의 대상인 일원상의 진리를 스스로 체득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한 신앙의 방법임을 강조하여 사실신앙과 대비되는 진리신앙, 그리고 실지불공과 대비되는 진리불공을 역설했다. 이 두 방향은 각각 지향하는 바가 다르므로 병행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사실신앙과 진리신앙이 서로 바탕이 되고 서로를 촉진하는 상보적 관계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종국에는 궁극적 진리인 일원상 자리로 합치된다는 것을 알고 병행해야 한다.
사실적 도덕의 훈련
사실적 도덕의 훈련도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사실적인 도덕을 훈련하자는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도덕의 훈련을 사실적으로 하자는 의미이다. 전자는 현실에 부합되지 않은 비사실적 도덕을 버리고 사실적 효용이 있는 도덕이 주장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후자는 도덕을 훈련하여 내면화 인격화하지 못하고 형식에 흐른 도덕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이해하려면 ‘사실적 도덕’과 ‘사실적 훈련’의 두 측면으로 고찰해야 한다.
① 사실적 도덕:인류의 역사가 장구한 만큼이나 사람의 도리를 밝힌 도덕의 종류도 많아져서 경우에 따라서는 현실사회의 문화나 현대인의 의식에 적합하지 않은 도덕이 전통이라는 이름아래 존숭되고 있으며, 공리공론에 머문 비사실적 도덕이 인간의 삶을 억압하고 있다. 도덕이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 또는 사람다울 수 있는 선과 덕성을 구현할 의무와 윤리를 밝힌 것이다. 또한 도덕은 인간 삶의 현장에서 공동선을 실현할 덕목으로 선정된 것으로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경험적 규범이다.
여러 형태의 법도 같은 경로를 거쳐 정립된 것이지만 사회 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법은 사회의 외적 규제로, 도덕은 개인의 내적 규제를 담당하는 것으로 분화되었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사회가 혼란해지듯이 도덕이 살아나지 않으면 인간의 내면적 가치관이 흔들리고 행위에 모순이 생겨나며 결국 사회 공동체의 혼란으로 치닫게 된다. 법은 공동선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약할 수밖에 없어서 타율적 강제성을 띠는 반면에 도덕은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며 자율적 실천의지를 바탕으로 실현된다.
따라서 법과 도덕 모두 시대의 인심과 문화에 적합해야 하는데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 전근대적 가치관을 토대로 한 도덕이 여전히 존숭된다면 그러한 도덕은 지켜지지도 않고 지키려고 하지도 않을 죽은 도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실적 도덕이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사실적 도덕의 조건은 진리에 바탕 한 도덕, 시대에 맞는 도덕, 현실 생활에 부합되는 도덕,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도덕 등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도덕이 모두 비사실적 도덕이라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도덕도 각 시대에 충분히 도덕의 기능을 발휘해왔던 의미 있는 것들이므로 존중하되 다만 그 본래 의미가 현실에서 살아나도록 가치를 재해석하고 실천 방법이 현실에 부합되도록 재정립해야 한다. 진리를 바탕으로 한 도덕이라는 조건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적 도덕은 현실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과 궁극적 진리 곧 일원상의 진리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 양면 가치를 충족시켜야 하며, 소태산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킬 도덕을 종교적 수행의 과목으로 정립하여 ‘삼학’ 교리로 천명했다.
② 사실적 훈련:도덕은 규범으로만 존재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도덕을 배우고 익혀서 생활에 응용함으로서 도덕적 인간, 도덕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이 더 중요하고 본질적이다. 그러기 위해서 도덕의 학습 곧 훈련이 필요하다. 도덕적 인간은 도덕을 체득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며, 도덕사회는 도덕을 실천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질서와 정의와 선이 구현되는 사회이다. 이처럼 실천이 중요한데도 전통사회에서는 일부 지식층과 지배계급들에게서 형식에 치우친 도덕론과 비현실적이고 독선적인 도덕지상주의가 민중을 호도한 바 있다.
특히 자신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도덕적 지식만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에게만 실천할 것을 강조하면서 그 결과를 자신의 도덕론으로 저울질해왔던 관료주의적 도덕 교육이 오히려 도덕 가치를 희석시키고 사회의 불신을 조장해왔다. 한편 도덕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경우에도 지나치게 현실에만 매몰되어 시간적으로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도덕 교육, 공간적으로 특정 지역이나 문화권에서만 인정받는 도덕 또는 특정 국가와 민족들만이 지지하고 옹호하는 도덕 교육 등의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러한 사례는 현대 사회에서도 정치적 목적이나 이데올로기적 학습을 위해 도덕 교육을 오용하는 경우로 나타나고 있다. 소태산은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더불어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사람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 자주력을 갖추어서 물질을 선용함과 동시에 광대무량한 낙원세계를 건설할 두 축으로 삼았으며, 이를 신앙과 수행이라는 종교적 교의로 정립했다. 그리고 수행 과목으로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의 삼학 수행을 통해 일원상의 진리와 합일 할 수 있는 큰 인격을 쌓도록 했다. 이러한 수행이 진리적이면서 사실적인 도덕의 훈련이다. 〈朴光秀〉



